끝장 승부 보다 맞은 계엄 교훈
모두가 패자, 정치권 수술대 올라야
강성 지지층 기대는 습관 멀리하고
새 대통령은 연정·협치 가치 되살리길
이재오 "대화 안 풀리면 함께 등산을"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국정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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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 승부를 보려다가 맞은 게 비상계엄이다. 자제력이 절실하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지외교학과 교수
계엄과 탄핵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심각하게 쪼개졌다. 대통령 파면으로 일단락됐지만 극단주의를 부추긴 정치권의 반성과 자중, 상처 회복이란 과제가 남았다.
자기 주장만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해법이 아니다. 깨진 거울을 붙여도 자국이 남듯 그대로 놔뒀다간 회복 불가한 분열의 흉터가 뚜렷하다. 정치 원로와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자발적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차기 대통령은 당장 뼈아프고 손해 보더라도 이를 감내할 정도의 그릇을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치 원로들은 연정과 협치를 주문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17대 후반기)은 8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5년 단임제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그날부터 다음 선거를 위한 경쟁을 시작하게 되는 구조”라며 ‘정치 실종’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승자 독식’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새 대통령이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①패배 진영도 국정에 참여해야
2015년 12월 경기 수원시 경기대 수원캠퍼스에서 열린 경기도 연정 1주년 정책토론회에서 남경필 경기지사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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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된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불복하고 무도한 계엄으로 민주적 절차를 뭉갰다. 그를 비호한 정당과 이에 맞서는 정당 모두 치열하게 대립하는데 그쳤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탄핵의 교훈을 외면하면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이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리면서 대권 주자들이 하나둘 꿈틀대는 상황으로 바뀌자 정치 원로들은 과거의 성공사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가장 확실한 대안은 개헌”이라고 전제를 달면서도 “대선 후보들의 연정이나 협치 공약조차 없다면 (개헌 논의조차) ‘꽝’이 된다”며 절박함을 드러냈다.
②누가 권력 잡든 자제력 키워야
그래픽=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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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과도한 일방주의'를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헌법재판관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선고에서 지적했듯,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직자에 대한 '줄탄핵'에 나서거나 근거 없는 의심에 사로잡혀 계엄이라는 극단적 사태로 치달은 ‘선 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을 위해서는 권력을 쥔 측에서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다수당은 다수당대로 자제력 없이 끝장 승부를 펼치다 맞은 게 비상계엄”이라며 “정치인들이 국회를 떠나 자꾸 거리로 나가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것도 자제력 결여에서 비롯된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서로 자제력을 높인다면 국민이 바라보는 정치권 불안정도 크게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 "피청구인 내지 정부와 국회 사이의 이와 같은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짚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금의 국민의힘은 무언가를 민주당에 양보하면 ‘끌려간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고, 민주당도 국민의힘을 향해 ‘다수당을 무시하냐’는 식의 소통을 반복했다”면서 “한쪽의 오만과 다른 쪽의 열등감이 지금의 심리적 내전 상태를 불러온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거리보다는 국회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국민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③꼬였으면 함께 풀어라... '큰 그릇' 새 대통령 나타나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4월 청와대 관저에서 이재오(왼쪽) 한나라당 여야 원내대표와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조찬을 마친 뒤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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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치권의 갈등이 꼬일 대로 꼬인 상태라면 '막후 정치'를 가동해서라도 풀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오 이사장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던 2006년 여야가 사립학교법을 두고 극한 대치를 펼칠 때도 이를 풀기 위해 김한길 당시 여당(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북한산 대동문까지 등산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야당이었던 우리는 장외투장에서 철수할 명분이 생겼고, 여당은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일 명분을 찾은 것”이라며 현재 정치권이 새겨야 할 장면으로 꼽았다.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와 3자회동을 갖고 김한길 원내대표에 ‘야당 의견을 들어주자’고 설득한 사례를 이 이사장은 "잊지 못할 대통령의 여유"라고 평가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를 악마로 여기고 극단적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행태는 희망이 없다”며 “정치권이 거리에 있는 사람만 유권자로 여기지 말고,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중도층’을 생각하며 정치를 되살리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2006년 1월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 대화를 나눈 이재오(왼쪽)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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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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