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저촉될라' 축제 미루고 순방 중단
개최 가능한 행사도 '일단 미루고 보자'
"소상공인 등 피해 고려… 대책 세워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따른 조기 대선이 오는 6월 3일로 확정된 8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계단으로 한 남성이 올라가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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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선거일이 6월 3일로 정해지며 축제 등 각종 봄 행사를 연기 또는 중단하는 지자체가 잇따르고 있다. 공직선거법 저촉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건데, 경기침체에 시름하는 소상공인을 감안하면 지나친 몸 사리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제86조)은 선거 60일 전부터 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이 행사를 개최하거나 후원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대선일은 불과 56일 뒤라 이 조항은 바로 적용된다. 당장 체육대회나 공청회, 교양강좌, 사업 설명회, 직능단체모임, 경로행사, 민원상담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각종 행위가 금지된 것이다. 위반 시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6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위를 상실하고 피선거권도 박탈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예정에 없던 선거라 지자체에서 지레 보수적으로 판단해 행사를 연기하거나 중단하고 있다"며 "선관위에도 문의가 쏟아지다 보니 하나하나 대응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지난달 13일 순천 어울림체육센터 다목적체육관에서 진행된 '순천시 정책비전투어' 행사 중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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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 1순위'는 명백한 선거운동으로 꼽히는 지역민과의 대화다. 전남도는 올해 목포시를 시작으로 22개 시군을 차례로 돌며 진행하던 '정책비전투어'를 중단했다. 오는 10일 영광군, 17일 곡성군 등 방문 일정은 대선 이후로 늦췄다. 전북도는 지난 2월부터 14개 시군 방문 행사를 이어오다 마지막 완주만 남겨두고 잠정 연기했다. 충북도 역시 이번 주 예정했던 진천군과 옥천 순방 일정을 미뤘다.
강연이나 학술행사 일정도 줄줄이 변경되고 있다. 제주도는 이달 초 개최하려던 '제12회 국제e-모빌리티엑스포'를 7월로 넘겼고, 경제단체 행사인 '제주경제와 관광포럼' '글로벌 제주상공인 포럼'은 대선 이후에 일정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경북 구미시는 이달 16일부터 매월 한 차례씩 박정희대통령 역사자료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리더십 강연'을 계획했다가 하반기로 조정했다.
지역 상권 회복을 위한 할인 행사나 축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기도는 당초 오는 19~27일 개최 예정이던 '경기 살리기 통큰 세일'을 6월 이후로 연기했다. 통큰 세일은 총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도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일반상권 등 약 700곳을 대상으로 페이백, 쿠폰, 경품 등을 지원하는 행사다.
지난해 6월 단오를 맞아 울산 성남동 시계탑사거리에서 태화강마두희축제 큰줄당기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울산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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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에 근거한 행사나 주민 동의가 필요한 사업 설명회, 특정 시기에 치르지 않으면 목적 달성이 어려운 '합법적' 행사도 일단 미루거나 축소하는 분위기다. 강원 원주시는 5년 만에 완공한 치악산바람숲길 개통식을 당초 이달 24일 열려다 대선 이후로 바꿨다. 동서남북 방위식인 현재의 자치구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 서구는 권역별 주민 설명회를 취소하고 온라인 설문조사 등 다른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울산 중구는 300년 넘게 단옷날에 맞춰 열어 온 전통줄다리기 태화강마두희축제 날짜를 이달 30일에서 변경할 예정이다. 중구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없는 행사라도 시빗거리를 초래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축제 개막일이 사전투표일이라 선거사무 지원 등으로 인한 차질도 예상돼 날짜 변경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조재욱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법 위반에 대한 유권해석이 굉장히 포괄적이고 모호해 지자체 입장에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조기 대선처럼 총선, 지방선거 등 정기적인 선거가 아닌 경우 갑작스러운 행사 취소로 시민과 소상공인이 피해를 보는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사천=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구미=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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