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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제2의 봉준호·한강 위해… 100억 낸 ‘매트리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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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지누스 창업주 기부금으로

연세대 현대문화예술연구원 설립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언더우드관 앞에서 이윤재 전 지누스 회장이 웃고 있다. 그는 이날 모교인 연세대에 100억원을 기부했다. 연세대는 기부금으로 ‘이윤재 현대문화예술연구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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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노벨 문학상의 한강 작가가 전 세계를 전율시킨 걸 보세요. 문화(文化)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가치 있는 투자처라고 봅니다.”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언더우드관에서 본지와 만난 이윤재(77) 전 회장은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몇 년간 지켜본 뒤 (기부를) 결정했다”고 했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아마존에서 ‘침대 매트리스 판매 1위’로 명성을 떨친 온라인 가구·매트리스 기업 ‘지누스’의 창업주 이 전 회장은 이날 100억원을 연세대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 전 회장 뜻에 따라 연세대는 캠퍼스에 ‘이윤재 현대문화예술연구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대학에 녹음 스튜디오 4곳과 실습 강의실 12곳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음악·영상·댄스·문학 등 대중문화 강의를 할 계획이다. 이 전 회장은 “연세대가 예술적 상상력과 학문적 통찰을 겸비한 연구·교육의 중심지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업계에서 ‘세계 1위 미스터 매트리스(Mr. Mattress)’라고 한다. 그는 과거 텐트 제조 기업 진웅을 운영하다 매트리스로 부활해 세계적 기업인으로 떠올랐다. 메모리 폼 매트리스를 돌돌 말아 배송하기 쉽게 만들었는데, 2014년 아마존 입점으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누스는 미국 온라인 매트리스 시장에서 점유율 30%가 넘는 1위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9204억원이다.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언더우드관 앞에서 이윤재 전 지누스 회장이 웃고 있다. 그는 이날 모교인 연세대에 100억원을 기부했다. 연세대는 기부금으로 ‘이윤재 현대문화예술연구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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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이 전 회장은 1975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해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그만두고, 1979년 텐트 등 캠핑용품을 판매하는 기업 ‘진웅’을 설립했다. 1989년 코스피에 기업을 상장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7년 대한민국을 덮친 IMF 외환 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에 밀리고 불황으로 인한 실적 악화로 빚이 1000억원대로 늘어났다. 2005년엔 상장폐지까지 겪었다. 회사를 살려보겠다며 백방으로 뛰었지만 악재(惡材)가 겹쳤다. 2012년 매트리스를 생산하는 중국 공장에 대형 화재가 나 90%가 불에 타버렸다. 그는 “잿더미에 올라 죽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워 매일 새벽 울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위기가 오면 ‘버티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버티기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 감사한 것을 적어봤다. 빚이 1000억 있어도 안 죽고 살아 있는 것, 산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가족이 있는 것도 있었다”며 “그렇게 감사한 게 54가지나 있더라”라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캠핑용품에서 매트리스·침대 등 가구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전환했다. 자체 브랜드를 생산해 온라인 유통망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다 보니 회사가 점점 회복하기 시작했다. 상장폐지된 지 14년 만인 2019년 코스피 재상장에 성공했다. 이 전 회장은 “가장 벅차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했다.

이후 이 전 회장은 자기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 창업가들을 찾아 지원하기 시작했다. 유망 스타트업을 선발해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G&G스쿨(스케일업 MBA)을 2022년 개설해 지금까지 운영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또 별도 기금도 조성해 장래성 있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투자와 경영 조언을 한다.

그는 “한국 문화 콘텐츠의 성공은 우리 민족이 지닌 고유한 서사와 감수성, 예술적 표현력의 결과”라며 “청년 세대는 기술적 감각과 예술적 직관을 동시에 갖춘 세대”라고 했다. 그는 “이들이 올바른 철학과 사회적 감수성을 지닌 창작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문화 예술이 인류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공감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려면 창작자들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며 “이번 기부가 세계적인 문화 예술 인재를 배출하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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