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돈 없다" 치료 관뒀던 유방암 환자들…이젠 과거가 되다[인터뷰]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박경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엔허투 급여 1년…환자부담 연400만원대로↓

'HER2 저발현' 환자에서 표적치료 시대 열어

"엔허투, 2차 치료 사용 시 3차보다 이점 커"

[서울=뉴시스] 박경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최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하고 있다. 2025.04.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엔허투 같은 약제가 유방암 환자에게는 '기적'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암이 진행하는 속도를 효과적으로 늦추면서 과정을 보다 편안하고 일상생활 가능하도록 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박경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최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국내 허가 전부터 말기 유방암 환자의 생존기간을 4배 이상 연장한 신약으로 주목받으며 4050 유방암 환자의 희망이 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가 작년 4월 건강보험급여 적용된 지 1년이 지났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엔허투는 지난 2022년 12월 국내에서 HER2(인간표피 성장인자 수용체 2형)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2차 이상 치료에 허가받은 ADC(항체약물접합체) 항암 신약이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2차 치료에서 기존 치료옵션 대비 환자의 무진행생존기간을 4배 이상 개선하며, 건보 적용에 대한 높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작년 4월 1일 급여화됐다. 의약품 가운데 최초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5만명 이상 동의했고, 총 6건의 급여 적용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급여 적용 후 연간 8300만원에 달했던 환자의 투약비용이 연간 약 400만원대(본인부담금 5% 적용 시)로 절감되며 경제적 부담을 확 줄였다. 현재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2차 치료와 HER2 양성 진행성·전이성 위암의 3차 이상 치료 시 급여가 적용된다.

박 교수는 "엔허투는 급여화되기 전까지 환자에게 '그림의 떡'같은 치료제였다"며 "건보 적용되면서 그동안 여러 약제로 연명하다시피 버텨온 유방암 환자들이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1차 치료를 받는 환자도 2차치료에 든든한 옵션이 추가돼 희망을 갖게 됐다. 치료 결과도 매우 개선돼 훨씬 연장된 생존과 삶의 질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폐와 간까지 암이 전이됐던 한 환자의 경우, 엔허투 사용으로 거의 완전관해(종양 소실)에 가까운 치료성적을 냈다고 소개했다. 재발·전이돼 10여년간 치료받은 이 환자는 폐에 전이된 채 오래 버틴데다 이전 치료제로는 폐에 있는 종양이 잘 줄지 않았고 간으로도 전이되며 절망에 빠진 상태였다.

박 교수는 "급여 안 되던 시기에 이 환자는 10개월간 자비로 엔허투를 투약했는데, 치료반응이 좋아 간·폐의 병변이 CT상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었다"며 "완전관해에 가까운 좋은 결과를 보였고 엔허투가 예상보다 빠르게 건보 적용되면서 경제적인 부담을 덜었다. 최근 합창단 공연에 참여하는 등 즐겁게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엔허투가 뇌 전이를 동반한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도 뛰어난 효과·안전성을 임상연구에서 나타내며, 뇌전이 환자 치료옵션으로 대두되고 있다.

뇌전이가 발생하면 방사선 수술, 방사선 치료 등 방법이 있긴 하나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고 임상적으로 뚜렷한 개선을 보이는 경우도 많지 않다. 결국 생존기간이 제한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혈액-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는 약제가 그동안 많지 않았다.

박 교수는 "엔허투는 약의 확산 능력이 좋아 뇌전이 환자에서의 치료 효과가 좋게 나타났다"며 "뇌전이 환자에서 엔허투가 다른 약제보다 우선순위로 고려되고 있고, 실제로 환자들에게 뚜렷한 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방암 환자 2명 중 1명 'HER2 저발현'서 표적치료 시대 열어


작년 5월에는 엔허투가 HER2 표적치료제 최초로 HER2의 발현 수준이 낮은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도 추가 허가 받았다. 저발현 환자에서도 효과적인 HER2 표적치료 시대를 연 것이다.

과거에는 HER2 저발현의 개념이 없어 'HER2 양성'과 'HER2 음성'으로만 구분됐으나, 실상 전체 유방암 환자 2명 중 1명(약 50%)은 HER2 저발현 유방암에 해당한다. 기존에 HER2 음성으로 분류돼 표적치료가 불가능했던 환자 중 60%도 HER2 저발현 유방암인 것으로 보고된다.

박 교수는 "HER2 저발현 개념 자체가 엔허투의 등장으로 생겨났다"며 "즉 엔허투는 유방암의 분류 기준을 재편하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HER2 발현이 높은 환자에서만 엔허투 효과를 확인했지만, 초기 임상에서 HER2 발현이 낮아도 효과있다는 게 관찰됐다. 이후 3상을 통해 저발현 환자에서도 임상적으로 효과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엔허투가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에 허가되면서 환자의 생존기간이 연장될 뿐 아니라, 이전처럼 반복되는 치료 실패와 그로 인한 좌절감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혜택"이라며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가치는 아니지만, 환자들이 더 밝고 좋은 마음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유지하면서 치료받을 수 있어 의미 있다"고 강조했다.

HER2 저발현 환자는 아직 건보 혜택을 못 받지만, 엔허투가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에 급여 적용된 후 저발현 환자 역시 보다 인하된 가격으로 사용 가능해졌다는 게 박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60㎏ 환자 기준으로 엔허투 1회 투여 시 약 4바이알이 필요한데, 4바이알을 사용할 경우 1회 투약 비용은 약 560만원 정도"라며 "그러나 제약사 환급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로는 1회 투약 비용이 400만원대까지 낮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대부분의 환자에겐 큰 부담이 되고 있긴 하다"고 말했다.

"조기 치료해야…엔허투, 2차 치료 사용이 3차보다 이점 커"


환자가 엔허투의 치료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조기부터 적극적인 치료의 중요성도 부각된다. 글로벌 유방암 치료 가이드라인에선 호르몬 수용체 양성 여부와 관계없이 HER2 양성 또는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2차 치료에 엔허투를 우선 권고하고 있다.

박 교수는 "어떤 약이든 효과가 증명됐다면 치료 순서상 앞단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환자가 여러 약제에 많이 노출될수록 종양 이질성(Tumor heterogeneity)이 커지기 때문"이라며 "엔허투 역시 치료 시점이 늦어질수록 HER2 수용체의 발현 정도가 다양해지고 항암제 내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치료 초기에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엔허투를 2차 치료에서 사용하는 게 3차 사용보다 환자에게 훨씬 이점 있다"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2차 치료에서 엔허투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 또한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겐 2차부터 엔허투를 권해 처방한다"고 말했다.

그는 "엔허투가 없던 시절 흉벽 재발, 출혈 등으로 고통 겪다 힘들게 떠난 환자들의 얼굴이 지금도 떠오른다"며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동반한 환자는 암의 진행이 빠르고 공격적이라 치료가 어려운데 해당 환자에게 엔허투가 있었다면 훨씬 더 편안하고 천천히 삶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엔허투 같은 약물이 환자에겐 기적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ngyj@newsis.com

▶ 네이버에서 뉴시스 구독하기
▶ K-Artprice, 유명 미술작품 가격 공개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뉴시스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