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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수)

개헌 고차방정식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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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음료를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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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준일 | 시사평론가





대한민국에선 개헌이 쉬울까 계엄이 쉬울까. 정량적으로 보자면 계엄이 더 쉽다. 계엄의 경우 1948년 10월 여수·순천 계엄을 시작으로 지난해 12·3 계엄까지 총 17번의 계엄이 있었다. 반면 개헌은 상하이 임시정부 헌법 개정을 제외할 경우 1952년 발췌개헌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총 9번이 있었다. 왜 개헌이 쉽지 않을까. 모든 정파가 시기와 의제를 합의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한 정당이 선거에서 3분의 2인 200석 이상을 차지한 적은 한번도 없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이 200석을 넘기긴 했지만 당시에는 개헌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대선-개헌 동시투표’에 관한 논쟁은 그동안 개헌 이슈가 지녔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권력을 가진 쪽은 항상 개헌에 소극적이다. 윤석열 정부 때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주장했지만 국민의힘에서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쪽이 개헌에 소극적이다. 1등 주자인 이재명 대표 상황에선 개헌 등 다른 변수를 만들지 않고 내란세력 대 헌정수호세력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이 당선에 유리하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개헌 반대 세력이 기득권이라며 프레임 전환을 위해 개헌을 활용하고 있다.



정치인마다 바라보는 지점이 다른 것도 개헌을 어렵게 만든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권력구조 개편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가장 선호도가 높다. 5년 단임제의 최대 단점인 먹튀 정권을 방지하고 책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함이라 한다. 하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 권한 축소는 직접 관련이 없다. 오히려 4년마다 열리는 각종 선거를 대통령 선거 혹은 대통령 임기 중반과 맞추기 위한 성격이 더 크다.



최근 보수 진영에서 차기 대통령이 임기를 3년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대통령 임기를 2년 단축해 2028년 총선과 대선을 일치시키자는 거다. 이 경우 대통령과 여당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동시에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제왕적 대통령-여당 연합의 탄생이다. 반면 다음 대통령 임기는 그대로 5년으로 하고 2030년에 지방선거와 대선을 일치시키는 방법도 있다. 중앙과 지방 행정권력을 동시에 선출하고 2년 뒤 국회의원 총선을 중간평가로 활용하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 견제 측면에선 이게 더 낫다. 문제는 행정부, 입법부 권력을 쥔 정당이 다르고 극한 대립을 할 경우 현재처럼 정치 불능에 빠지게 될 거란 점이다.



개헌 시점 역시 민감한 문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월3일 대선과 개헌을 동시투표하자고 했지만 민주당 친명들은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내란 종식 시점이 이재명 대표의 당선인지, 윤석열의 내란죄 확정인지, 모든 내란 공범들의 단죄인지 모호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내란이 종식될까.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 수사가 3년가량 이어진 것이 떠오른다.



왜 개헌이 어려운지는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10차 개헌이 잘 보여준다. 당시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 완수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개헌을 추진했는데 국민기본권 강화, 국민소환제, 지방자치제 강화, 대통령 피선거권 나이 제한 철폐,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하며 아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개헌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한쪽에서는 개헌만능론을 펼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대통령의 독주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개헌무용론을 말한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헌법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헌법이라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겉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권의 상황이 이상적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제도 개선을 통해 상생과 견제를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개헌은 쉽지 않다. 대선 전 개헌은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각 정파가 합의하는 최소공배수 개헌을 우선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말은 타당성이 있다. 국민들이 마지막 개헌 투표를 한 것이 38년 전이다. 개헌의 국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견이 없는 사안에 대해 원 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 국민의힘이 개헌을 주장하려면 수용 가능한 개헌안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개헌에 대한 모든 논의를 막기보다는 최소한 논의는 해보자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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