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 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 수사 결과 발표를 촉구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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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이대로 종결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하였고 사건이 일어난 시점부터 끝날 때까지 온전히 가해자 손에 의해 모든 것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담할 뿐입니다.”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성폭력 혐의(준강간치상)로 수사를 받다 숨진 가운데 장 전 의원을 고소한 피해자 ㄱ씨가 “지금까지 수사를 바탕으로 성폭력 혐의에 대한 결과를 발표해달라”고 촉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가 이런 내용의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이날 대신 읽은 발언문에서 ㄱ씨는 “이미 수사가 80% 진행되었으며 가해자 또한 조사를 받았다”며 “사망하였기에 처벌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하였더라도 수사로 확인된 사실을 발표해 사회적인 엄벌에 처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어 “가해자의 사망이 면죄부가 돼선 결코 안 된다”며 “이 사건이 이대로 종결될 경우 다른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 낼 기회조차 사라질까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장 전 의원이 사망함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될 경우 피해자는 ‘피의자가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종결(불송치)한다’는 간단한 통보만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렵게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로선 피의자가 사망한 탓에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밝힐 기회가 사라지는 셈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ㄱ씨의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경찰이 그간 수사를 통해 성폭력이 실제 있었는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와 참고인 조사, 피해자가 사건 당시 촬영한 영상·사진, 가해자가 보낸 문자메시지 등의 조작 여부, 피해자 진술 내용 신빙성에 대한 전문가 의견 조회 등이 마무리된 뒤 피해자가 사건 직후 응급 채취한 증거물에서 검출된 남성 디엔에이(DNA)가 장 전 의원의 것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조사만 남은 상태에서 장 전 의원이 숨졌다”고 설명했다.
또 “(장 전 의원 사망으로 취소된)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진실을 말하고 나니 홀가분하다’고 말했던 피해자는 또다시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둔 채 살아가게 됐다”며 “가해자의 사망이 기소에는 걸림돌이 될지 몰라도, 범죄 사실을 판단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새로운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왼쪽),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고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성폭력 사건 수사 결과 발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단체 338곳, 개인 1만1290명이 서명에 참여한 탄원서를 민원실에 제출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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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소속인 안지희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과 같이 피해자 진술이 핵심 증거가 되는 사건에서 그 진술이 어떠한 평가도 받지 못한 채 무력화되는 구조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국가의 응답을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사건이 ‘공소권 없음’이라는 형식만으로 종결된다면 피해자가 허위 진술을 했다는 사회적 의심과 낙인으로 이어져 2차 피해가 확산될 우려도 크다”고 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도 “수사 결과 발표는 단순히 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용기와 싸움에 우리 사회가 최소한으로 응답하는 방식”이라며 “경찰은 이 사건이 성폭력임을 판단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 권력을 이용해 사건을 일으키고 은폐한 가해자가 아닌 고통 끝에 용기를 낸 피해자를 위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권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기자회견 뒤 단체 338곳, 개인 1만1290명의 서명이 담긴 수사 결과 발표 촉구 탄원서를 서울경찰청 민원실에 제출하고, 서울경찰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런 요구에 대해 “통상 수사 중인 상황에서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만 수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다만 피해자 쪽 요청이 있는 만큼 앞서 (수사 결과를 밝힌) 유사 사례가 있는지, 법적 문제가 없는지 등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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