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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6일 대구 북구 서변동 일대 야산에서 산불을 진화하던 헬기가 추락해 있다. 이 사고로 70대 조종사 정모씨가 숨졌다. 대구=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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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대구 북구 서변동에서 산불을 끄던 헬기가 추락, 조종사 정모(74)씨가 숨졌다. 지난달 26일 경북 의성에서도 산불 진화 헬기가 떨어져 박현우(73) 기장이 사망했다. 앞서 2022년 양양, 2023년 예천 산불 현장에서 불시착한 헬기의 조종사들 역시 모두 70대였다. 요즘엔 자동차도 고령 운전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교통사고 예방 차원에서 면허증을 반납하란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난도가 훨씬 높은 소방 헬기는 어떻게 70대 조종사들이 몰게 된 걸까.
□ 산불 진화 작업은 산림청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하고 있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지자체가 자체 소방 헬기를 보유하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입찰을 붙여 민간에 산불 진화 작업을 맡기고 있는 데 그 예산도 미미하다. 이런 상황이니 민간 업체들은 제작된 지 30년, 심지어 50년도 넘은 노후 헬기를 임차해 타산을 맞출 수밖에 없다. 조종사 임금도 많이 줄 수 없다. 구형 헬기를 몰아야 하니 기장이 고령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결국 ‘용돈벌이’라도 해야 하는 70대 조종사만 민간 소방 헬기를 탄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 노인이지만 실력까지 과소평가할 순 없다. 우리나라에서 헬기 조종사가 양성되는 곳은 주로 군이다. 매년 한서대 헬리콥터조종학과 등에서 배출되는 졸업생도 대부분 군으로 간다. 군 조종사 정년은 55세다. 이후 이들은 경찰청과 소방청 등 국가기관으로 옮긴다. 이곳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뒤 은퇴하는 게 코스다. 그 이후에도 일을 더 하고 싶거나 해야 할 때 민간으로 간다. 그러니 민간 소방 헬기를 탈 즈음엔 이미 70세에 가까울 때가 많다.
□ 민간 헬기 조종사의 나이엔 법적 제한도 없다. 항공안전법은 조종사 정년을 65세로 두고 있지만 이는 대한항공 같은 운송 사업을 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 외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 6개월마다 항공 종사자 신체검사(1종)만 통과하면 된다. 앞으로도 관련 법과 예산을 크게 고치지 않는 한 70대 헬기 조종사의 추락 사고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돈 문제다.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70대 기장에게 가장 적은 돈을 주며 가장 위험한 일을 맡겨야 하나.
박일근 수석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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