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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수)

10년간의 역사 복원…‘헤리티지’로 완성된 신세계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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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역사’ 옛 제일은행 본점, ‘더 헤리티지’로 재탄생

2015년 매입 후 10년간 복원 몰두, “역사적 의미 최우선”

정유경 회장 의지 담긴 프로젝트, 세심함 곳곳 묻어나

역사·문화·산업 헤리티지 동시에, 차별화 나선 신세계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고풍스러운 근대식 외형의 건물에 들어서자 1930년대에나 볼 법한 옛 방식의 엘리베이터에 시선이 쏠렸다. 엘리베이터 인디게이터(표시기)는 LED 숫자 대신 붉은색 전구로 위치를 알려주는 방식인데, 마치 1900년대 초반으로 되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높은 층고의 천장에는 근대에 주로 사용되던 꽃 장식과 중후한 샹들리에가 달려 관람객들을 맞는다. 한 켠에는 과거 이 건물에서 사용하던 가로 세로 2m 남짓의 커다란 금고 문이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935년 준공된 서울 명동 소재 옛 제일은행 본점을 현대식으로 복원한 신세계백화점 ‘더 헤리티지’다. 2015년 이 건물을 매입한 신세계백화점이 10년간 복원에 매달린 끝에 9일 대중에 공개됐다. 역사·문화·쇼핑이 공존하는 새로운 고객 경험을 확대하기 위해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야심차게 준비해 온 프로젝트다. ‘국내 최초 백화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신세계백화점이 문화·산업적 ‘헤리티지’(유산) 키우기에 나서면서 확실한 차별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신세계백화점 ‘더 헤리티지’ 4층에 있는 유물 전시 구역. (사진=김정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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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가 우선” 역사 복원에 진심

이날 방문한 더 헤리티지는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1·2층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 ‘샤넬’이 들어섰고, 지하 1층과 4·5층엔 신세계백화점이 직접 참여한 공간들로 구성됐다. 더 헤리티지의 백미는 4층이다. 4층은 역사적 보전 가치가 높은 공간으로 1935년 옛 제일은행 본점에 있던 다양한 유물과 사료들을 전시했다. ‘더 헤리티지 뮤지엄’이라는 명칭을 받은 4층은 대부분이 현 시점에 맞춰 기능성만 변경하고 과거의 원형을 살리는 방식으로 복원됐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바닥 등을 보강하는 공사 과정에서 꽃 모양 석고부조 등을 떼야 했는데,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최대한 훼손 없는 방식으로 복원하는 방법을 택했다”며 “이번 프로젝트에선 문화재 보호가 최우선 철칙이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총 3개의 엘리베이터도 1935년 당시에 사용되던 인디게이터 모양으로 복원했고, 과거 건물에 사용되던 일부 타일을 재사용하는 식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더했다. 내부 강당의 경우엔 창틀과 벽 등을 거의 손대지 않고 활용했다. 이한얼 ㈜신세계 아트기획팀 큐레이터는 “강당은 향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인데, 벽 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가벽을 세워 준비 중”이라며 “더 헤리티지의 1층과 4층 천장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이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공간도 눈에 띄었다. 대표적으로 남측의 커튼월을 뉴욕의 ‘더 모건 라이브러리’에서 영감을 받아 흰색 철판으로 제작했고,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집열판은 해체 후 정원을 조성해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또 이동 약자의 편리한 이동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신설하기도 했다.

1935년 옛 제일은행 본점에 있던 금고 문도 그대로 보존해 4층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사진=김정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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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헤리티지’서 엿보인 정유경 회장의 세심함

유통업계에선 정유경 회장이 이번 더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 대기업에서 2015년부터 무려 10년이란 시간을 들이면서 국가문화유산 보존과 복원에 나설 수 있던 건 총수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정 회장은 내부에 해외 주요 건축 양식 등에 대한 보고를 주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유산 복원을 통한 헤리티지 강화 전략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백화점은 제일은행 건물 매입 후 인허가에만 2~3년을 매달렸다. 이후 서울시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등 30여차례의 자문을 받으며 복원에 나섰고 1935년 준공 당시와 90%가량 동일한 수준까지 완성했다. 과거 문헌과 사진 자료 등을 최대한 수집해 보존·복원 과정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준공 당시 설치됐던 2m 남짓의 은행 금고문 원형을 유지, 장소만 4층으로 옮긴 것도 이 같은 세심함의 결과다. 정 회장 특유의 꼼꼼함과 세심함이 더 헤리티지 곳곳에 묻어져 나온다는 평가다.

이 같은 세심함은 지하 1층 ‘하우스 오브 신세계’ 공예 기프트샵, 5층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단순 복원을 넘어 한국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공예상품, 전시 등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5층에 신세계 한식연구소가 한식 디저트와 차를 제공하는 ‘디저트 살롱’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사와 문화, 쇼핑을 한 번에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전략이다.

정 회장은 최근 서울 명동 일대를 ‘신세계화(化)’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농구장 3개 크기(1292.3㎡)의 초대형 디지털 사이니지 ‘신세계스퀘어’를 설치, 명동에서 신세계백화점만의 뚜렷한 차별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더 헤리티지 개관까지 더해 명동·남산공원 초입까지 이른바 ‘신세계 타운’이 펼쳐진 셈이다. 명동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헤리티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신세계백화점만의 유통업 헤리티지도 동시에 각인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본점의 외국인 구매는 2022년 241%(전년대비), 2023년 514%, 2024년 458% 증가 중이다. 박주형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신세계의 모든 역량과 진심을 담아 더 헤리티지를 개관했다”며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관광의 즐거움과 쇼핑의 설렘, 문화의 깊이까지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헤리티지’ 4층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차원의 전시관. (사진=김정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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