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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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한 벼락 이사를 했다. 올해 초 집주인에게서 날아온 통보 때문이었다. 월세부터 시작해 조목조목 모든 비용을 재계약 시 올려 받겠다는 메시지였다. 추가될 비용을 합해 보니 거의 40만~50만원이었다. 나가 달라는 말을 굳이 돌려 한 모양이었다.
나도 홀로 한 이사만 10번이 넘어가는데, 이런 황당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억울하지만 내게는 기분이 상할 여유도 없었다. 얼른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새 거처를 찾는 일은 간단했다. 가까운 미래에 함께 집을 합치기로 약속했던 친구와 조금 이르게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침 친구의 형제가 집을 나가게 되어 빈 방이 생겼고, 그 방에 내가 들어가기로 했다. 당장 부동산을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두 살림을 한 집에 합치면서 생긴 문제는 터져나가는 짐이었다. 모든 가전이 두 배 이벤트가 된 것이다. 때마침 친구 J가 독립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여태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터라 그의 문제는 나와 정반대로 모든 물건을 새로 장만해야 하는 것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사 도움을 요청하는 명분으로 냉장고, 세탁기, 소파를 자연스럽게 넘겼다. 나머지 가구는 버리지 않고 중고로 팔았다. 친구 B에게는 시스템 행거를 넘겨받았다. B의 부모님 역시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짐을 정리하던 중에 내게 필요한 물건들을 아낌없이 선물하셨다. 대신 나는 나의 매트리스를 넘겨드렸다. 서로 필요를 맞춰가다 보니 불필요한 물건이 사라졌고, 덕분에 새 공간은 훨씬 가벼워졌다.
그때 친구 B에게 혹시 시간이 되냐고 물었고, 그는 이미 내가 부탁하기도 전에 나를 위해 그날을 비워뒀다고 했다. 그 말에 스며들듯 밀려오던 안도감을 기억한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성인 여성에게도 마을은 필요할 것 같다. 세상의 크고 작은 일에 치이며 살아갈 때, 나를 받쳐줄 작고 단단한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은, 인생의 곡선들을 잠시 에피소드처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준다.
집주인 때문에 겪은 불쾌함은 분명 있었지만, 늘 그렇듯 나는 금세 잊고 살아갈 것이다.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 것은, 그런 감정보다 결국 친구들의 따뜻한 손길일 테니까. 도움을 청할 줄 모르던 어린 날엔 혼자 해내야 했기에 강해졌고, 강해진 만큼 버텨낼 줄도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닌, 함께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나를 감싸는 작은 마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으로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홀로 사는 사람은 없다. 나도 누군가의 마을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내가 느낀 이 안도감을 누군가에게도 전해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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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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