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객원연구원 |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하면서 12·3 비상계엄은 111일 만에 위헌·위법 행위로 판정받았다. 12·3 계엄 당시 일부 군인들은 위헌·위법적인 계엄 포고령을 이행하려고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내부에 진입하는 등 적잖은 문제를 유발했다. 당시 국회와 선관위에 투입된 군인은 16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위헌·위법적 명령을 따랐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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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에 군인 1600명 동원
위법적 명령엔 거부할 장치 필요
당시 계엄에 동조한 일부 군 고위 지휘관들은 국회와 선관위에 난입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받고도 위법성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채 상부 지시라는 이유로 부하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했다. 계엄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한 장성은 국회에 출석해 “저 같은 군인이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면 그게 쿠데타”라며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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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역임한 새뮤얼 헌팅턴은 『군인과 국가』에서 군은 정치체제와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 전시 폭력을 관리하기 위한 제반 지식과 전문성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군 지휘관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전문성을 위태롭게 하고, 군사적 판단이 정치적 편의에 따라 잘못 사용될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팅턴은 국가안보에 관한 사안에 대해 군인은 개인적 신념과 무관하게 명령을 수행해야 하지만, 사적 목적을 위한 위헌·위법적 명령은 따르지 않는 것이 군의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고서 중립을 유지하는 것과 모르면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명확한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평시와 전시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체계적으로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상관의 위헌·위법적 지시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하관(부하)의 권한을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현행법은 명령 발령자의 위법한 지시를 금지하는 법규만 제시할 뿐 상관의 명령이 위헌·위법적일 경우 적법한 절차에 의해 거부할 수 있는 별도 규정이 없다.
둘째,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처럼 군의 정치적 중립 및 위헌·위법적 명령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주기적인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군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을 시행하던 초기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 성범죄가 문제가 되면서 현역 군인들의 성희롱·성범죄 예방 교육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해졌다. 지속해서 교육하고, 위반할 경우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등 구체적인 징벌과 연계했더니 실질적 효과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군의 정치적 중립과 불법적인 명령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군내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전시에 적과 교전 중인 상태에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는 특수한 상황이므로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라도 전쟁법을 위반하거나 반인륜적 지시에 반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독일은 군인들에게 불법 명령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상생활 및 작전 상황에서 명령 거부가 실효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했다. 즉, 무조건적 상명하복이 아니라 명령을 이행할 때 상하 모두가 불법성 여부에 대해 고민하도록 했다. 한국 사회와 군대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런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군의 정치적 중립 및 위헌·위법적 명령 대응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홍철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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