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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성폭력' 피해자 "죽음으로 사건 종결되면 어떤 피해자가 용기 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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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수사 결과를 발표해달라고 경찰에 촉구했다.

고 장 전 의원 성폭력 피해자 이윤슬(가명) 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 관련 단체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을 통해 "가해자의 죽음으로 사건이 종결돼서는 안 된다"며 경찰이 현재까지의 수사기록을 토대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정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 씨는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의 대독을 통해 "(가해자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부터 끝날 때까지 온전히 가해자의 손에 의해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담할 뿐"이라며 "얼룩진 20대 시절을 위로받을 기회가 가해자의 사망으로 사라져버린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권력형 성폭행 피해자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 사건이 이대로 수사 종결될 경우,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 낼 기회조차 사라질까 우려스럽다"며 "죽음으로 사건이 종결된다면 어느 가해자가 처벌을 달게 받겠으며 어떤 피해자가 용기 내서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까지 이뤄진 수사를 바탕으로 성폭력 혐의에 대한 결과가 발표돼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죄를 감당하지 않고 가해자가 사망해 죄가 사라지는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찰은) 수사로 확인된 사실을 발표해 (가해자를) 사회적인 엄벌에 처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故)장제원 전 국회의원의 발인식이 4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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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지난 2022년 2월 24일 자신의 고통을 더는 참지 못해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고소할 결심을 하지 못했었다"며 "장 전 의원은 당시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었고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며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실세였다"고 회상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는 내게 안희정·박원순 사건의 피해자들처럼 자신도 고소로 인해 공격을 받지 않을까 물었다. 나는 그에게 선뜻 피해자들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안전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경우 이미 가해자의 범죄 여부를 실체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피해자는 장 전 의원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3차례에 걸쳐 진술조사를 받았으며 관련인들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피해자가 사건 당시 촬영한 영상과 장 전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 내용에 대한 감정 절차를 마쳤으며, 피해자 진술 내용의 신빙성에 대한 전문가 의견 조사도 마무리됐다. 이 씨의 특정 신체부위와 속옷 등에서 남성의 DNA가 나왔다는 국과수 감정 결과도 있다. 장 전 의원은 해당 DNA와 자신의 DNA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조사를 앞두고 사망했다.

김 변호사는 이같은 자료들을 토대로 수사당국이 장 전 의원의 범죄사실을 공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가해자의 사망으로 피해자는 또 하나의 돌덩이를 가슴에 올려놓게 됐다. 이런 상태로 피해자가 계속 삶을 살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것인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가해자의 사망이 그의 기소 여부에는 장애가 될지 몰라도 범죄사실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장 전 의원의 성폭력 사건 조사 결과를 수사결과 보고서에 기록하고 공식 발표하라는 서명운동에 개인 1만1290명, 단체 336곳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경찰청 민원실에 해당 탄원서를 제출했다. 여성단체들은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사건과 관련한 면담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이날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고(故)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성폭력 피해자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경찰에 장 전 의원 성폭력 사건 수사 결과 발표를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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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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