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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채소 당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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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전호제 셰프.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이제 먹는 당근보다 기업 '당근'을 많이 찾는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느꼈다. 마치 먹는 애플을 검색할 때와 비슷한 존재감의 차이랄까. 클릭 수의 차이를 보니, 앞으로 '채소 당근'이라는 검색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

당근 거래가 활성화되기 전부터 제주도에서 일했다. 전국 당근의 60%는 제주도에서 난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출하한다. 요즘처럼 꽃이 피면 관광객이 하나둘 늘어난다. 이때쯤 당근을 이용한 제철 메뉴를 만들었다. 직접 만든 당근주스, 당근케이크를 팔았기에 매주 한두 번 정도 농장에서 당근을 공급받고는 했다.

당근주스는 회전용 강판을 가진 대형 주서기를 이용했다. 당근 무게 대비 절반 이하의 수율로 주스가 나온다. 아침에 만들면 당일에 판매가 모두 끝난다. 오렌지색 당근 주스는 그 자체로 맛이 있다. 잠이 덜 깬 아침 손님들은 제주 당근주스와 브런치 메뉴를 주문하곤 했다.

제주 당근과 달리 미국 캘리포니아 당근은 얇고 긴 모양을 가졌다. 봄이 되면 이 제철 당근을 이용한 메뉴를 만들곤 했다. 노란색, 보라색 당근은 가니쉬(장식)로 색감을 내고 소형 당근도 색깔별로 앙증맞게 준비했다. 보기엔 예쁘지만 하나씩 작은 칼로 다듬고 당근 위에 줄기를 살려서 조리해야 했다. 가끔 이 작은 당근을 얇게 썰어 가니쉬로 사용했는데 버리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파인다이닝에서는 중요한 비주얼을 차지했다.

고기 파트에서는 당근을 둥글게 깎아냈다. 두세명이 작은 나이프로 최대한 손실을 줄이며 당근을 타원형 모양으로 만들어 낸다. 이것을 뜨겁게 달군 팬에 버터를 넣고 재빠르게 당근을 넣으면 버터 자체의 수분 덕분에 당근이 익는다. 물에 데치지 않아 당근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국물의 향·맛·색까지 높여주는 당근

다듬고 남은 당근 부스러기는 끓고 있는 육수에 넣는다. 우리와 달리 양식 육수에는 당근이 빠지지 않는다. 당근이 들어간 국물은 묵직한 향과 단맛을 준다. 고깃국물이 아닌 채소만으로 육수를 만들어 보면 그 차이를 잘 느낄 수 있다. 채소 육수는 채식 요리를 위해 만들기도 하는데 양파, 셀러리 등 각종 채소를 넣고 30분 정도 끓인다. 여기에 당근은 색과 맛을 높여주니 빠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가격대에 따라 중국산 당근을 사용하기도 한다. 중국산은 말끔하게 세척이 돼 공급된다. 아삭한 맛도 좋고 즙도 많다. 작년에는 초과 농약 검출 논란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중국산을 사용하지 않나 싶다.

국내산은 마트에서 흙 당근으로 판매하는데, 집게로 흙에서 바로 나온 듯한 당근을 고르면 된다. 흙 내음이 나는 것도 좋다. 다만 집에 와서 보면 표면 상태가 잘 보이지 않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관세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는 요즘, 중국산 당근의 관세는 한시적으로 0%로 낮아졌다. 기존에는 30%였다. 제주산 당근과 무의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도 당근 채를 썰면서 한두조각 입으로 먹어본다. 은은한 단맛이 난다. 강한 맛의 소스에 묻히기 쉽지만 질리지 않는 야채가 아닌가 싶다. 매년 4월 4일은 국제 당근의 날이라고 하니, 당근의 숨은 역할을 알려야 할 듯싶다. 이 글로 '채소' 당근의 존재감을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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