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 일방적으로 매긴 고율 관세를 90일간 유예하되 중국 관세만 125% 세율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그들(외국)이 점점 불안해하고 조금씩 두려워하고 있다"고 관세 유예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정작 불안한 건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일 수 있다. 미국 관세의 약점 세가지를 알아봤다.
상호관세를 발표한 4일(현지시간). 무역 연례 보고서를 들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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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직전인 8일(현지시간) SNS에 "방금 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했다"며 우리와의 여러 현안을 열거하고는 이를 '원스톱 쇼핑'에 비유했다. 트럼프는 이 게시물에서 "중국도 거래를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중국의 전화를 기다리겠다"고도 언급했다. 중국은 더 고율의 보복관세(84%)로 답했다.
그런데도 관세 발표 당시 "다른 나라들에 조언하자면, 보복하지 않으면 이게 (관세의) 최고점이 될 것"이라고 협박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9일 "이것이 처음부터 그의 전략이었다"고 둘러댔다. 사실이라면 스스로 사기극이었음을 자인한 것이다. 결국 초조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트럼프다. 트럼프 지지도는 여전히 50%에 육박하지만, 증시는 출렁이고 있다. 언뜻 거침없어 보이는 미국의 관세 정책에도 의외로 여러 약점이 존재한다.
■ 약점➊ 서비스 수지=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지난 4일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 본사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관세를) 상품에만 적용했는데, 누가 알겠나. 결국 서비스에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서비스로 관세를 확대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미국의 성장 엔진이 꺼질 수 있다.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한 표면적 이유는 무역적자다. 이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를 넘어선 게 문제라는 거다.
그런데 실제 미국의 무역수지(상품수지+서비스수지) 적자는 GDP의 3.1%였다. 서비스 분야에선 미국이 무역수지 흑자(GDP의 1.1% 규모)를 무척 많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신발·반도체·자동차 등 상품 무역에선 수출보다 수입이 많았지만, 인터넷서비스나 소프트웨어, 로펌과 같은 법률서비스 분야에서는 수입보다 해외 수출이 많았다는 얘기다.
빌 게이츠의 말대로 미국이 서비스 부문에도 관세를 부과하면, 해외의 보복관세나 비관세장벽으로 MS·구글·아마존·페이스북·로펌들·지식재산권(IP) 판매 수출이 줄어든다. 미국이 유럽의 디지털시장법이나 한국에서 추진했던 플랫폼법에 강하게 항의했던 이유도 미국 테크기업들이 장악한 인터넷서비스 분야의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MS·구글·메타·아마존과 같은 테크기업은 미국이란 나라의 영원한 성장을 상징한다. 이 회사들은 모두 창업자가 여전히 지배하는 일종의 신생기업이지만, 전세계 시가총액 상위 10위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 2월 발표한 통화정책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가 계속 성장한 건 높은 기술 수준을 지닌 창업 기업들이 꾸준히 등장하면서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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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점➋ 미국 10년물 국채=캐나다가 지난 3월 11일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방침에 항의하며 온타리오주에서 미국으로 뻗은 전화 서비스의 요금을 기습적으로 25% 인상하자, 트럼프는 캐나다 일부 유제품에 관세 250%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과적으로는 두 나라 모두 이를 철회했지만, 투자자들은 술렁거렸다.
캐나다의 국채 투매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미국 국채 4000억 달러어치가 한꺼번에 채권시장에 매물로 나오면, 미국의 국채 거래가격은 폭락한다. 공급이 수요를 한참 초과하기 때문이다.
국채는 표면금리와 만기일이 정해져 있다. 국채 가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그 국채의 수익률이 오른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금리 상승이다. 시중금리는 대체로 10년물 국채 수익률과 연동된다.
그런데 미국 국채의 가격 하락 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 10년물 국채의 수익률(금리)은 7일만 해도 3.90%대였는데,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9일 현재 4.50%에 근접하고 있다. 여러 투자자가 시장에서 미국 장기국채를 매각해 국채 거래가격이 하락했다는 얘기다. 미국 국채의 가장 큰 거래처는 외국 정부다. 이들이 미국을 믿지 못해 미 국채를 시장에 푼다는 뜻이다.
■ 약점➌미군=미국이 관세를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 3월 30일 서울로 돌아가 보자.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은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5년 만에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를 열었다. 세 장관은 서로 손을 맞잡은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 정계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은 3일 자신의 SNS 계정에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나는 새 직장에 출근한 첫날부터 매일 점심으로 불고기를 먹고 있다"는 게시물을 태극기 이모티콘과 함께 올렸다.
브라이언 샤츠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 4일 의회 본회의장 연설에서 이 사진을 공개하며 "매우 충격적인 이미지였다"고 우려했다. 8일에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일본과 한국 등 동맹과 교역 파트너들을 (관세 협상에서) 우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안덕근(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왕원타오(오른쪽) 중국 상무부장,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이 지난 3월 30일 5년 만에 열린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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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에서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은 아시아의 두 군사 동맹국이 사실상 적국인 중국의 장관과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은 것만으로도 동요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막무가내 관세 부과가 소원한 관계이던 한중일을 다시 뭉치게 했다는 후회도 있을 것이다. 모두 대만해협 문제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미국 싱크탱크들은 진영을 막론하고 한국·일본·필리핀 아시아 3개 군사동맹국이 자신들 대신 중국과 일종의 대리전을 치르는 시나리오가 담긴 보고서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필리핀과 일본을 방문해 일종의 '단속'에 나섰다.
필리핀처럼 선택지가 있는 나라들은 미국의 강점이자 약점인 미군을 관세 협상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해에 걸쳐 치우친 외교를 해온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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