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교보교육대상 심사 과정에서 2005년부터 2023년까지 노숙인 인문학 강의를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참여한 유일한 사람이 최 대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 뒤로도 이어갔다. 전국을 다녔다. 여러 강사를 초빙해 책고집 인문강좌도 연다. 인문학 운동만 20년을 넘겼다. 햇수로는 21년째다.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수식이 따라붙었다. ‘노숙인 인문학 한길 20여년’ 이야기를 들었다.
최준영 책고집 대표는 노숙인 곁과 볕이 되어주는 인문학을 강조한다. 김정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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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동행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였다. 외롭고 쓸쓸했다”고 했다. 초창기엔 성프란시스대학과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에 소속돼 참여했다. 2010년 이후론 소속 없이 혼자 전국 노숙인 시설을 돌아다녔다. “한 번을 불러주든 여러 번을 불러주든, 강사비가 적든 많든 따지지 않고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여러 인문학 강좌를 만들어 진행했다.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다.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두자고 마음먹은 것도 몇번인지 모른다”고 했다. “가난한 것들이 무슨 인문학을 공부하느냐” “그 사람들 밥 준다고 해서 오는 거지 공부하러 오는 것 아닐 거다” 같은 비아냥과 조롱과 편견에 자주 부딪혔다. “한두 사람의 인식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이 그랬다”고 한다. “긴 삶을 제대로 살려면 밥이나 잠자리 못지않게 정신적인 힘, 즉 인내와 의지가 중요합니다. 바로 그 정신적인 힘을 길러주는 게 인문학입니다. 생각하게 하고 읽게 하고 판단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고, 계획하게 하고 일어서게 하는 게 바로 정신의 힘이니까요.”
가족과 헤어진 뒤 서울역을 오가던 노숙인이 최 대표 강의를 듣고 용기를 내 가족에게 연락해 재회한 일, 알코올 중독 청년 노숙인이 강의 뒤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일 등이다.
인문학 과정에 참여한다고 바로 사람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고 한다. 강의를 들으며 차츰 자신을 존중하고, 자기 의견을 드러낸다고 한다. 최 대표는 “바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음’의 징표다. 그럴 때 보람도 느끼고, 비로소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한국 최초 노숙인 인문학 강좌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은 2005년 9월 21일 서울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입학식에 참석한 노숙인 등 참석자들이 교가를 부르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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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적 성과도 있다. 최 대표는 ‘노숙인 인문학의 전국화’를 이뤘다고 자평한다. 2023년에 문화예술위원회 지원으로 전국 12개 지역 시설에서, 2024년엔 시민 모금으로 전국 7개 시설에서 강좌를 진행했다. 올해는 교보생명, 생명보험협회 사회공헌위원회, 사회연대은행 도움으로 15개 시설에서 강좌를 진행 중이다. 그는 “노숙인 인문학도 서울에서만 지속된다. 서울노숙인, 부산노숙인, 대전노숙인을 분리해선 안 된다. 노숙인인문학의 전국화는 곧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강좌의 구조화, 즉 지역, 성별, 나이 따질 것 없이 가난한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강의 내용도 중요하다. 최 대표는 “노숙인 시설의 참여자들은 학력도, 나이도, 직업 경험도 제각각이다. 대학 강의 때보다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임해야 비로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의 빈민교육 활동가인 얼 쇼리스(1936~2012)가 1996년 설립한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는 신문을 읽을 수 있고, 1년 과정을 이수할 계획이 있는 만 17세 이상 모두에게 문이 열려 있다. 교통비, 도서 비용 등도 지원한다. 주거, 수감, 트라우마, 건강 때문에 교육 받기 힘든 이들이 찾는다. 이미지 출처. www.clementecourse.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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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고집 인문강좌는 노숙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거창한 구호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곁과 볕’을 강조한다. “강좌로 외롭고 쓸쓸한 분들,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에게 곁이 되어주려 한다. 서로에게 다가가 곁이 되어주고, 나아가 따스한 볕을 쬘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곁과 볕의 의미”라고 했다.
노숙인 연극단, 노숙인 관현악단, 노숙인 시인, 노숙인 소설가, 노숙인 에세이스트…. 최 대표는 노숙인 인문학이 노숙인 문화예술인의 탄생으로 이어지길 꿈꾼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강좌의 상징이었던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코스 정신을 계승해 인문문화예술 종합학교를 만들려 한다. “가난한 사람도 문화예술을 누릴 기회를 얻어야 하고,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더 나아가 지속적인 공부를 통해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그 정신을 두곤 “가난한 이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의 곁이 되어주고,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고집스러운 독서와 인문학 공동체로 사회 바꾸려는 '책고집' 최준영 작가
https://www.khan.co.kr/article/201904081038001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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