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0 칩 겨냥 환경규제 나선 中 당국
AI 칩 자급…노광장비까지 직접 개발
올해 '반도체 장비 투자액' 세계 최대
中 반도체 기술력…이미 韓 앞질렀다
중국의 이런 자신감을 무작정 허세로만 여길 순 없다. 국내 연구기관의 평가에서도 많은 전문가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대다수 분야에서 한국을 앞질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엔비디아 칩 쓰지마" 돌연 규제 나선 中 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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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최근 자국 기업들을 상대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새로 건축하거나 확장할 때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반도체를 쓰도록 규제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엔비디아의 H20 칩을 겨냥한 규제로 평가된다.
H20 칩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AI 칩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면서, 엔비디아가 주력 AI 칩인 H100 칩 대신 출시한 저사양 반도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국이 H20 칩을 밀수로 조달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엔비디아를 겨냥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는 건 자급이 가능할 정도로 반도체 역량이 올라왔다는 자신감"이라며 "미국에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AI 칩' 자체 개발하더니…노광장비까지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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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대륙 반도체'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알리바바 그룹 계열사인 앤트그룹은 화웨이가 개발한 반도체로 AI 모델 '링플러스' 개발에 착수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반도체가 쓰였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어센드 910' 칩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딥시크의 R1 모델 개발 당시에도 어센드 910 칩이 사용된 사례가 있다.
중국은 기술 자립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노광장비까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노광장비 시장은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하고 있는데, 최첨단 공정에 필요한 EUV(극자외선) 장비는 2019년부터 중국 수출이 전면 금지됐다. DUV(심자외선) 장비도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 시캐리어는 지난달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차이나'에서 직접 개발한 DUV 노광장비를 처음 공개했다. 7나노 공정부터 EUV 장비가 필요하지만, 중국은 2023년부터 DUV 장비만으로 화웨이 제품에 탑재되는 7나노 칩을 생산했다고 주장한다.
화웨이는 선단공정에 필수적인 EUV 장비까지 자체 개발했다면서 올해 3분기 시험 생산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반도체 양산에 도입하겠다는 로드맵까지 내놨다. 진위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중국이 EUV 장비 기술력까지 확보했다면 전세계 반도체 업계에 큰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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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에선 미국의 지나친 견제가 오히려 중국의 제조 역량을 키워내는 '역설'을 불러왔다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을 얕본 측면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을 더 강하게 조였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움직이기 위해 '애국 소비'를 진작했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5년 '메이드 인 차이나 2025(MIC 2025)'라는 국가전략계획을 수립했다.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보다 높은 가치의 제품·서비스를 생산하는 거점이 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 구상에는 막대한 정부 자본이 투입됐고, 2025년 결실을 내고 있다.
정부 차원의 보조금은 연구개발(R&D) 분야에 집중됐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은 2017~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1.7% 이상을 산업 정책에 지출했다. 이 비율을 적용하면 지난 10년간 3조달러, 우리 돈으로 4400조원이 투입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중국 정부는 보조금·펀드 등을 통해 지난 10년간 140조원 이상의 재정을 반도체 산업에 투입했다.
발목 잡는 韓정부…K반도체, 중국에도 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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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여겨지던 한국의 반도체 기술력을 상당 부분 따라잡거나 앞지르게 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올해 2월 발간한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분석' 브리프에 따르면 국내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지난해 기준 한국의 반도체 분야 기술 기초역량은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도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은 사실상 전무하고 '주 52시간 근로 제한'에 발목이 잡혀 R&D 역량 강화도 쉽지 않다. 한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책은 저금리 대출과 세액 공제, 인프라 구축 지원 등에 그친다. 대부분 간접 지원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겸 부회장은 지난달 중순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중국 업체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메모리와 파운드리 분야를 추격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핵심 개발자들이 연장 근무를 더 하거나 더 많은 연구시간에 집중하고 싶어도 '주 52시간 규제'로 인해 개발 일정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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