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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로 묶인 트럼프 반도체 관세...대중 관세율 수위 따라 삼성·SK하이닉스에 기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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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율 협상 조정 가능한 상호관세 달리
러트닉, “반도체·전자 품목은 협상 불가”
무역법 232조, 국가안보 영향 조사 따라
고율 관세 등 수입량 제한 조치 발동
美애플, 中, 대만, 韓 삼성·LG 피해범위
국내 업계, “위기의 인텔 도우려는 의도”
중국의 범용 메모리 반도체 수입 막히면
삼성전자·하이닉스 수요처 강화 모멘텀
트럼프 관세 장기화에 대비하는 기업들
현금 늘리고 지출 축소로 장기대응 모드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탑승해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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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무기 시스템에 중국 제품들이 들어가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와 각종 전자 제품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반도체와 스마트폰,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상호관세 충격에 이어 2차 공포를 일으키고 있다.

기술 통제가 적용되고 있는 반도체 품목에 스마트폰, 평판 패널 등 다른 가전 제품까지 패키지로 묶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비단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 아이폰을 대량 생산하는 애플만 관세 폭탄을 맞는 게 아니라 대만과 한국의 글로벌 반도체·가전 기업들도 다양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염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제품은 관세 예외가 아니다”라면서 “공급망 전체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이날 CNN과 인터뷰에서 “반도체는 많은 국방 장비에 중요한 핵심 부품인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결정하는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진행해 그런 것들을 면밀히 파악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 역시 ABC뉴스와 인터뷰에서 반도체·전자 제품 관세가 미국 경제에 중요한 이슈임을 확인시켰다. 그는 “이것은 국가들이 협상으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싶다”며 이번 품목 관세의 목표가 반도체 및 첨단 전자 제조업의 미국 내 재건에 있음을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루트닉 장관은 최근 컴퓨터 산업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통화하며 관련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품목과 다른 전자 제품이 패키지로 묶여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은 한국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을 시사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따르면 대미 최대 전자 제품 공급 국가는 중국으로 그 뒤를 멕시코와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가 잇고 있다.

중국과 대만의 반도체 및 전자 제품 기업은 물론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가전 부품과 완성품을 생산해 북미 시장에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트럼프 신규 관세 폭탄의 주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무역확장법 232조가 적용될 경우 비단 고율의 관세 뿐 아니라 수입 할당량 부과 등 강력한 수입 제한 조치가 발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232조를 활용해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했지만 수입 할당량까지 설정하지는 않았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서 생산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타깃으로 유독 높은 관세와 수입제한 조치를 적용할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요처 확대에 따른 수혜를 입을 수도 있다.

레거시(범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저가 중국산 공습에 시달려온 한국 업체들에 트럼프발 반도체 관세가 일종의 방패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22년에도 코로나19 팬데믹에 TSMC의 물부족 사태가 겹치면서 차량용 반도체 쇼티지(부족)가 발생했고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이 수혜를 입은 바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평판 디스플레이 등을 패키지로 묶어 국가 안보 위협을 조사하는 미국의 관세 전략은 관련 자국 제조사들을 우회 지원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라며 “대중 반도체 및 가전 제품 관세율 수준에 따라 한국 기업들에 다양한 위험과 기회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트럼프 관세 정책의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시에 준하는 공급망·재고 관리에 나선 상황이다. 지난 3월부터 대형 화물기 6대를 동원해 인도에서 생산한 아이폰을 대량 공수한 애플이 대표적이다.

스위스 초콜릿 브랜드인 린트의 경우 지난달 미국과 캐나다 간 관세 전쟁이 격화하자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생산된 초콜릿 물량을 대거 캐나다로 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간 보복관세 위기에서 미국산 물량을 서둘러 옮겨 재고 확보에 나선 것이다.

영국 랜드로버 재규어는 이달 초부터 트럼프발 자동차 품목 관세 25%가 발동하자 유럽 생산 물량의 미국향 선적을 일시 중단한 상태로,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자동차 품목 관세의 조정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 현대차의 경우 신규 관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 향후 두 달간 기존 모든 차종의 소비자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비자들에게 고지하며 위기 속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트럼프 관세 발 시장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현금 보유를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기업들도 늘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지난달 18~31일까지 영국 주요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분기별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약 63%는 비용 절감을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는 3개월 전 52%에서 증가한 수치이며,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는 게 딜로이트 영국의 설명이다.

딜로이트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인상을 고려할 때 CFO들이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을 전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영국 대기업들은 지금 혼란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CBS방송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통화할 가능성에 대해 “당장은 아무 계획이 없다”고 밝혀 양국 간 무역협상 교섭에 아직까지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재철·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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