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애미의 국립허리케인센터에 국립해양대기청(NOAA) 로고가 붙어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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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감시하는 세계 최고의 감시기구가 연일 인력과 예산 삼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엔 핵심 연구부서가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최고의 지구과학 연구 프로그램(부서)을 사실상 없애려 한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해당 부서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내 해양대기연구국(OAR)이다. 해양대기청은 전 세계의 기후변화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대표적 기관으로, 해양대기연구국은 해양대기청의 핵심 연구부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해양대기청은 끊임없이 인력과 예산 감축 압박을 받아왔는데, 이번엔 핵심 연구부서의 예산이 대거 삭감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백악관 관리예산실의 내년 예산안을 보면, 해양대기연구국의 예산은 올해 4억8500만달러(6937억원)에서 내년 1억7000만달러(2431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로 인해 재해 조기경보 체계, 기초과학 교육, 북극 연구 등에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나마 유지되는 토네이도 경보, 해양 산성화 등의 연구 프로그램은 국립기상청과 국립해양청으로 이전된다. 사실상 해양대기연구국을 폐지하는 수순이다. 내년 국립해양대기청의 전체 예산은 44억달러(6조2900억원)로, 올해보다 16억달러(2조2900억원) 줄었다. 전임인 바이든 대통령 시절 해양대기청장이었던 해양학자 릭 스핀래드는 “놀랍지는 않지만, 매우 충격적”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백악관은 이와 함께 국립해양대기청의 산하기관인 국립해양원(NOS) 예산도 절반으로 줄였다. 산호나 해양 오염,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이 해안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국립연안해양과학센터에 대한 지원도 끊었다. 주요 기후 데이터를 보관하는 국립환경정보센터의 예산은 4분의 3으로 줄었고, 2030년대 발사 예정인 해양대기청의 차세대 기상위성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백악관 관리예산실은 이 기상위성에서 바다의 색과 대기 온도, 오염 정도 등을 추적해 분석하는 감지기를 폐기할 것을 제안했다고 전해졌다. 트럼프의 첫 집권기부터 전임 바이든 대통령 시절 모두 국립해양대기청의 수석 과학자였던 크레이그 맥린은 이 예산안에 대해 “미국의 과학기술을 1950년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지난 2020년 7월부터 주간 단위로 보도하고 있는 ‘이주의 온실가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이 하와이 마우나로아와 알래스카의 배로, 미국령 사모아, 남극 같은 지구 평균 대기에 가까운 측정소에서 확인해 평균한 값이다. |
기후위기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는 집요할 정도로 관련 기관의 인력과 예산을 줄이고 있다. 앞서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기후 연구기금 400만달러를 삭감하기도 했는데, 해수면 상승과 해안 홍수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다. 백악관은 기금 삼각의 이유로 해당 연구가 “과장되고 믿을 수 없는 기후 위협을 조장하고,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기후 불안’을 가중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예산엔 ‘지구 시스템 모델링 협력 연구소’ 자금도 포함됐는데, 이 연구소 연구진 중엔 기후변화 시뮬레이션 연구로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수석기상학자인 마나베 슈쿠로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상무부가 프린스턴대의 연구기금을 삭감하면서 “해당 연구가 어떤 근거로 기후 불안을 부추기는지,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불안해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조치들은 모두 연방정부의 누리집에서 기후변화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한 뒤에 나온 조처다. 트럼프 정부가 정부 개편의 청사진으로 삼아온 ‘프로젝트 2025’ 문서엔 해양대기청을 해체하고 연구 부서를 축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결국 기상청을 민영화한다는 ‘프로젝트 2025’의 제안을 실행하기 위한 의도로 일부러 기상 예보 역량을 약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미국 보수주의 정책 연구기관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발간한 ‘프로젝트 2025'는 해양대기청의 연구를 “기후 경보주의의 근원”이라 비꼬며 “기후변화 연구의 우위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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