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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금)

전국에 땅꺼짐…‘재난·재해’ 아니라서 보상도 책임도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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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아침 7시44분께 부산 사상구 감전동 새벽시장 근처 도로에서 가로·세로 3m, 깊이 4m 규모의 땅꺼짐이 발생했다. 부산 사상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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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책임을 져야죠.”



지난달 24일 지름 20m, 깊이 18m에 이르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초대형 땅꺼짐(싱크홀)으로 25년을 알고 지낸 지인 박아무개(33)씨를 잃은 ㄱ씨가 14일 거듭 힘주어 말했다. 황망한 사고를 예방하려면 철저한 책임 규명과 피해자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ㄱ씨 바람과 달리 현행법에서 땅꺼짐 사고에 대한 규정과 보상 여부, 책임 소재 등은 모호하다. 잇따라 발생하는 땅꺼짐 사고로 시민 불안이 극에 달하지만, 땅꺼짐을 ‘재난·재해’로 규정한 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날도 부산 사상구 감전동 새벽시장 근처 도로에서 가로·세로 3m, 깊이 4m 규모의 땅꺼짐이 발생했다. 전날 가로 5m, 세로 3m, 깊이 4~5m 규모의 땅꺼짐이 발생한 지점에서 고작 2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명일동 땅꺼짐 현장에서 3㎞ 정도 떨어진 강동역 주변 도로에서도 전날 지름 20㎝, 깊이 10㎝의 도로 함몰 현상이 나타났다. 나흘째 함몰된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는 광명 신안산선 도로(11일), 애오개역 주변(13일) 등 매일 땅이 꺼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재 땅꺼짐은 ‘재난·재해’를 규정한 어느 법에도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은 땅꺼짐을 사회적 재난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재난안전법은 “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 등으로 일정 규모 이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를 사회적 재난으로 정의하지만, 여기서 ‘붕괴’는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로만 한정된다. 서울시가 명일동 땅꺼짐 발생 당일 작성한 보고서에서 “사회재난 인정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유다.



이는 피해자 보상 문제로도 이어진다. 사회적 재난 피해자라면 모든 서울시민이 자동으로 가입돼있는 ‘시민안전보험’을 통해 최대 2천만원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땅꺼짐 피해자는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는 원칙적으로 제외된다. 서울시는 명일동 땅꺼짐 사고 사망자 박씨에 대해서도 애초 “시민안전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이후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인명 피해”라는 대통령령의 사회적 재난 규정을 확대 적용하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원칙적으로 보험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까지 대응한 점에서 사회재난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보고, 공제회와 추가 협의를 통해 보험금을 지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처벌 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사업자 등 관리 주체의 예방책임을 높인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도로 땅꺼짐은 제외돼있다. 중대시민재해의 발생 공간인 공중이용시설에 ‘도로’가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탓이다. 서울시도 명일동 땅꺼짐을 두고 “(도로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하지 않아 중대시민재해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정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 정책위원장은 “어느 법에서도 도로 땅꺼짐 예방 조처나 관리 책임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는다”며 “안전을 위해 관리 대상을 확대하는 식으로 재난·재해 법체계를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김영동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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