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과 공포, 양 극단을 경계하며 중용 지켜야
내우외환 대한민국, 위기 속 리더의 자세 절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 이석형 등이 엮은 ‘치평요람’ 7권에 나오는 순자(荀子)의 말이다. 전통시대 가장 두렵고 무서운 병으로 여겨졌던 나병(한센병)에 걸린 사람조차, 근심과 고통에 시달리는 군주를 보면 차라리 자기 처지가 낫겠다고 여긴다는 비유다. ‘마음의 근심과 형세의 곤고(困苦)함’이야말로 최고 권력자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순자의 생각이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
리더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근심과 곤고함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치평요람’ 편찬자들은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첫째, 공경하는 자세로 일에 임해야 한다. “지도자가 공경함으로 일에 임할 때 성취되고, 실패는 반드시 태만함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둘째, 주도면밀한 계획과 엄숙한 시행이다. 이 주도면밀함과 엄숙함을 한 글자로 압축하면 두려워할 ‘구(懼)’이다.
1449년 9월, 세종이 보여준 언행이 그 좋은 예다. 재위 31년째 되던 그해, 중원대륙에 전란이 일어났다. 요동에 있던 통사의 급보에 따르면, 같은 해 7월 20일경, 몽골족 야선(也先)이 이끄는 군대가 만리장성을 넘어 요령성 광녕까지 침입했고, 곳곳에 약탈과 방화가 벌어졌다. 명나라 정통황제(영종)가 군사 7만을 이끌고 직접 정벌에 나서야 할 정도로 긴급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세종은 신하들을 불러 일렀다. “큰일을 당하면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임하되(臨事而懼 임사이구), 지혜를 모아 일을 이루어야 한다(好謀而成 호모이성). 두려워한다는 건 경계를 늦추지 않음을 말하며, 지혜를 모아 성사시키라는 건 무서움에 사로잡혀 허둥대지 말라는 뜻이다.”(세종실록 31년 9월 2일) 방심과 공포, 양 극단을 경계하며 중용의 자세를 강조한 것이다.
세종도 바로 그 점을 강조했다. 그는 두려움의 지나침과 부족함을 동시에 경계하기 위해 역사 사례를 들었다. 먼저 중국 동진(東晉)의 장수 맹창을 예로 들었다. 맹창은 적이 쳐들어오자 너무 두려워서 자결한 장수이다. 남쪽 지방의 작은 도적이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자 그는 겁에 질려 죽으려 했다. 부관이 싸움에 패한 뒤에 죽어도 늦지 않다며 만류했지만, 결국 맹창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후 부관이 힘을 모아서 성을 지켜냈다. 반대로 고려의 공민왕은 지나치게 태연했다. 홍건적이 쳐들어올 거라는 정보를 무시하고 있다가 결국 왕궁을 버리고 경상도 안동까지 도망쳐야 했고 온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다.
세종에 따르면 “맹창은 지나치게 무서워하다(過畏 과외) 실패한 사람이고, 공민왕은 두려워하지 않다가(不畏 불외) 실패한 사람”이었다. 두려움을 갖되 무서움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위기 속 리더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세임을 강조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 속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제 상황, 연이어 닥치는 국가적 재난 앞에 선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세종에게 해법을 구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아마도 ‘두려워할 구(懼)’라는 글자로 대답할 것 같다. 여야를 떠나 두려움과 공경의 마음으로 국정을 돌보며, 경연(經筵)을 열어 지혜를 모으고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라. 그리고 쇠심줄처럼 끈질기게 실행하라. 그러면 “뜬 말은 사라지고 민심이 안정을 찾으며, 마침내 예상치 못한 큰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