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모자 살인' 피해자 A씨와 B군./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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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도 없었다. 지문도, 혈흔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단 한 사람을 가리켰다.
2021년 4월 15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조모씨(당시 43세)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19년 8월 22일 서울 관악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피의자다. 침대 위에서 41세 여성 A씨와 6살 아들 B군이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손에 흉기를 든 흔적도, 방어한 자국도 없이 잠든 상태에서 피습당한 것으로 보였다. 사건 현장엔 범행 도구도 발견되지 않았다. 출입문은 멀쩡했고 침입 흔적도 없었다. 범행 수법의 잔혹성은 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사건은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A씨의 아버지가 딸과 연락이 닿지 않자 찾아갔다가 경찰에 신고했다.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은 사람은 남편 조모씨(당시 43세)였다. 아내와 아이가 사망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은 조씨는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어떻게 된 거예요?"라는 말 한마디 없이 침묵했다. 이후에도 조씨의 이 같은 태도가 이어졌다. 장례식장에서도 20분 남짓 머문 뒤 자리를 떴다. 상주로서의 역할은 없었다.
조씨의 재정 상태는 심각했다. 도예 공방을 운영하며 생활비 대부분을 아내에게 의존했지만, 경마에 빠진 그는 카드론과 대출로 수백만 원을 탕진했다. 사건 3일 전 그의 통장 잔액은 1900원에 불과했다. 사건 직후엔 노트북으로 아내의 생명보험금 수령 가능 여부를 검색한 기록도 나왔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아내에게 "공과금이 밀렸다"며 50만원을 받았는데, 이마저도 경마를 하는데 썼다.
하지만 살인의 직접 증거가 없었다. 무엇보다 살해 도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에 날카로운 칼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건 현장이나 조씨의 동선에서 찾을 수 없었다. 혈흔, 지문, 섬유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잔혹한 범죄에서 흔히 발견되는 방어흔도 없었다. A씨와 아이 모두 저항 흔적 없었다. 잠든 상태에서 공격 당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추측 뿐이었다.
'관악구 모자 살인' 피해자 B군./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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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의 유죄를 입증할 직접 증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집에 함께 있었다는 증거 만으로 살해를 입증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부검 결과 식후 4시간 내외의 사망 추정 시각이 정확히 조씨의 체류 시간과 겹쳤다. 조씨는 "잠들었다가 아이가 발로 머리를 차서 깼고, 잠이 오지 않아 공방으로 나갔다"고 진술했지만 경마 정보 검색 기록이 나왔다. 경마에 빠져있던 조씨는 밤 12시 30분쯤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목에 남은 자상에도 주목했다. 아내는 오른쪽 목, 아이는 왼쪽 목이 찔려 있었다. 이 특이한 상처는 양손잡이의 공격 가능성을 암시한다. 조씨는 왼손잡이였지만 도자기 작업 시 양손을 능숙하게 사용한 이력이 있었다. 법원은 이 점을 범인의 신체 특성과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정황이 모이고 겹치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판결이 던진 법적 논란도 여전히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직접적인 증거 없이 유죄가 선고될 수 있는가?"란 질문이다. 형사 재판에서 '합리적 의심 없는 유죄'가 기준이라면, 이 사건은 그 기준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씨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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