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닥쳐와 다급히 목줄 풀어줬지만, 집 못 떠나고 돌아와 다쳐
"가서 살아라, 너라도 살아야지" 다 불타버린 집 앞에서 이별
반려동물과 대피할 장소가 없다, '동반대피법' 필요
등의 털이 불빛으로 그을린, 아프고 고단한 눈빛을 한 개. 대추가 바라보며 묻는 듯했다. 산불이 났을 때 이리 타는 법 말고는 없었느냐고. 생은 소중하니 부디 그러지 않게 고민해달라고./사진=동물구조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인스타그램@everlove8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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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야, 가라. 가라고. 여기 있으면 죽어."
갈색빛으로 털이 그을린 개가 꼬릴 흔들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꾸만 할아버지에게 안기려 했다. 할아버지는 개의 이름을 부르며, 이동장에 들어가게 하려 애썼다.
대추야, 대추야. 가지 않으려는 개를 달래어 보내려는 이의 마음도 찢어졌다.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보내야 한단 생각이 눈물샘을 갈랐다. 산불로 다 잃은 백발노인의 눈에서 데워진 울음이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이게 맞는 거란 듯 대추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설명하면 비로소 알아들을 것처럼.
"가서 살아라, 너라도 살아야지. 내가 이렇게 돼서 치료도 못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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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죽을까 봐 대추를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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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산불로 모조리 불타버린, 안동 소재 대추 보호자의 집./사진=동물 구조 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인스타그램@everlove8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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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에서 함께 산 지 벌써 10년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대추가 서로 바라본 세월이 그랬다. 대추랑 어떤 사이냐고 묻자 할아버지가 투박하게 말했다.
자주 불러주고 나란히 걷는, 그런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의 날들. 돌연 그걸 깨트린 건 산불이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까지 덮쳐왔다.
부리나케 대문을 나섰던 할아버지는, 불현듯 대추 생각이 났다.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대추를 바라봤다. 목줄을 풀어주며 어찌할지 고민했다. 대피소에 데려가고 싶었으나 갈 수 없었다. 차에 실어야 하나, 갈 데가 없었다.
별수 없이 대추에게 이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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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가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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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겪었는지, 애써 묻지 않아도 고스란히 보여주던 대추의 엉덩이 상처./사진=동물구조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인스타그램@everlove8282) |
흡사 지옥 같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대피소에서 지내던 할아버지가 그제야 집에 돌아왔다.
참담한 광경이었다. 오래 부대끼며 살던 집의 모습이 아녔다. 지붕도, 경운기도, 벽도, 모든 게 불타 하얗게 됐다.
모든 게 낯설어진 집에서, 같은 게 하나 있었다.
연기를 많이 마셔 호흡도 불안정하고, 많이 다친 대추를 보며 할아버지는 무너졌다. 미안하고 아파서 오열했다. 왜 여기 와 있니, 멀리멀리 도망갔어야지, 다치지 말았어야지.
할아버지는 대추를 어떻게든 치료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가졌던 모든 게 불타버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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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데 가서 살아라, 할아버지가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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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모르고 반기던 대추와, 잘 살길 바라며 보내려던 할아버지가, 모든 게 불타버린 집 앞에 있었다./사진=동물구조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인스타그램@everlove8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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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옆에 난 불길마저 뚫으며 동물을 구하러 다니던 이들이 있었다. 동물 구조 단체 '도로시지켜줄개'가 그랬다.
"내가 지금 팬티 한 장도 없어. 여기 아무것도 안 남았어. 대추 좀 잘 치료해줘요. 부탁해요."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가 물었다. 대추가 잘 치료받아 회복된다면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할아버지가 이리 말했다.
"좋은 데 가서 살 수 있으면 보내주고, 혹시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다시 만나게 해줘요."
모든 걸 다 잃은 이가, 친구라 부르며 대추와 우정을 나눴던 이가, 더 나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 건넨 부탁이었다.
가서 아프지 말고 잘 살라고, 떠나는 대추를 보며 할아버지가 별수 없이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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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회복한 '대추'…가족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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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를 만나러 간 기자(왼쪽)와 최중연 SNC동물메디컬센터 수의사(오른쪽). 그리고 자길 치료해 준 이를 바라보는 대추./사진=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 |
그 바람대로 잘 회복되었을까. 대추가 입원했다는 SNC동물메디컬센터에 가봤다.
안쪽 입원실에 대추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환해진 얼굴. 꼬리치며 반기는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도하며 얼굴을 쓰다듬어주니 가만히 있었다.
화마의 흔적이 몸 곳곳에 새겨졌다. 상태가 어떤지 최중연 수의사에게 물었다.
"대추는 되게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 입원해 있는 애들(산불 피해견) 중에선 회복이 제일 빨라요. 통증이 가라앉으니 활력도 돌아오고, 밥도 잘 먹고요. 1~2주면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추의 상처는 많이 아물었다. 집에 돌아가도 될만큼. 그러나 돌아갈 집이 없어서./사진=동물구조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인스타그램@everlove8282) |
이 정도면, 실은 집에 가서 연고를 발라도 괜찮겠다고. 그런 대화를 주고받다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대추가 돌아갈 집이 영영 사라졌기 때문에.
"여기 있으면 죽어, 가거라."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엔, 잘 치료받고 좋은 가족 만나 잘 살았으면 좋겠단 바람이 가득했으니. 이 글로 대추가 좋은 연이 닿아, 환한 봄날에 꼬릴 살랑이며 다시 산책하길 바라고 있다. 뜨거웠던 아픔이 그리 지워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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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시켜줘야 해요" 환경 낫게 만들기 위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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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인해 그리 아픔을 겪고도, 다시 꼬릴 흔들어주고 귀를 젖혀주는 존재. 그걸 바라보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사진=동물구조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인스타그램@everlove8282) |
개들이 목줄을 풀어주어도 어디로 갈지 몰랐다고 했다.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가 현장에서 들은 얘기는, 비단 대추 사례뿐만이 아녔다. 그가 말했다.
"도망을 못 가는 거예요. 줄을 풀어줘도 어디로 갈지 몰라서요. 나가, 나가 했는데 차도로 달려갔대요. 이러다 다치거나 죽겠구나 싶어서 다시 안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산책시켜주셔야 해, 그랬어요."
목줄에 묶여만 살았던 개가, 갑자기 풀어준다고 해서 집을 쉬이 벗어날 수 없었을 거란 의미였다. 그동안 다녀본 만큼, 바라본 만큼, 그게 세상 전부가 되었을 것이므로.
산불 현장을 동분서주 누비며, 죽거나 다친 동물들을 찾아다니던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 새벽에 일어나면 억지로라도 열심히 밥을 먹었다고 했다. 그만큼 고된 시간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다만 그게 단순히 보호자들이 예뻐하지 않아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최중연 수의사가 이리 말했다.
"시골이라 '집 지키는 개' 그렇게만 키우시는 줄 알았거든요. 현장 가보니 아니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대추 보시면 사람 되게 좋아하잖아요. 보호자 분들이 예뻐하셨던 것 같거든요. 마지막에 구조했던 애가 있었는데, 보호자가 (다 불탄 와중에) 강아지 집만 새 걸로 해놓으신 거예요. 얘네 집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고. 이와 관련해 이효정 대표는, 키우는 환경 개선 등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도로시지켜줄개가 속한 '루시의 친구들'이 함께 산불 피해 지역을 다시 찾을 예정이란다. 목줄을 길게 늘려주고, 산책시켜줘야 한다고 당부하고, 키우는 집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 산불 피해견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근본적인 방법까지 그리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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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가 할아버지와 함께 갈 곳이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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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은 꺼졌고, 이슈는 흘러갔으며, 바뀐 건 여전히 없다. '반려동물 동반대피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물권행동 카라 캠페인./사진=캠페인 페이지 '빠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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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순간에도 할아버지가 떠올린 게 있었다. 이 녀석을 데리고 갈 곳이 있을까 하고.
현행법상 반려동물을 데리고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게 돼 있다. 할아버지가 대추와 함께 갈 곳은 없었던 거다. 차를 타고 대피소에 함께 머무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대추가 이리 아프진 않았을 거라고.
이에 동물권행동 카라가 '반려동물 동반대피법'을 마련하기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설득하기 위해 그들이 남긴 글을 적어둔다.
'어떤 동물은 목줄이 나무에 묶인 채, 어떤 동물은 화상을 입은 채 길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반려동물과 대피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기에 동물들은 남겨졌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국회는 반려동물 동반피난법을 제정하라. 행정안전부는 재난 시 반려동물과의 동반 대피 지침을 수립하라.'
그 권리를 보장하고, 대피소에 동물을 수용할 시설과 장비, 인력이 있어야 한단 것. 그러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되었나. 목줄이 풀리고도 불에 탈 수밖에 없었던 동물들이 외치고 있다.
부디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달라고. 우리도 많이 뜨겁고 아팠다고.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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