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색채 지우기에 반발
“트럼프는 대학에서 손 떼라” - 지난 12일 하버드대가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정부 보조금 삭감 압력에 하버드대가 적극 대응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14일 하버드대는 학내 반유대주의 등 진보적 색채를 지우라는 트럼프 정부 요구를 따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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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 보조금을 무기로 대학의 진보적 색채를 지우는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미국 최고 명문대 하버드대가 14일 “정부 요구를 따르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앞서 뉴욕의 컬럼비아대가 정부 보조금 삭감 압박에 반(反)이스라엘 시위 통제 등 트럼프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고 총장(대행)까지 교체하며 굴복한 반면 하버드대는 굽히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거부한 첫 대학”이라며 “연방 정부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의 대결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1636년 개교한 미국 최고(最古) 대학 하버드대는 규모가 가장 큰 기금을 운용하는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그래픽=김현국 |
하버드대는 트럼프 정부의 요구 사항이 미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위협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이날 학교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트럼프 정부의 요구 사항은 수정 헌법이 적시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지식의 탐구·생산·전파에 헌신하는 기관으로서 하버드가 지켜온 가치를 위협한다. 어떤 정권도 사립대학이 무엇을 가르칠지, 누구를 입학시키고 고용할지, 어떤 분야를 연구할지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 두려움 없는 진리 추구가 인류를 해방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다. 하버드대는 독립성과 헌법상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보복에 나섰다. 하버드대에 여러 해에 걸쳐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 22억달러(약 3조1000억원)와 6000만달러(약 850억원) 상당 계약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학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에도 정부에 맞설 수 있는 하버드대의 ‘맷집‘은 천문학적 규모의 기금에서 나왔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하버드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하버드대 기금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약 532억달러(약 76조원)로 트럼프에게 굴복한 컬럼비아대의 3.6배에 이른다.
하버드대는 정부 보조금 삭감을 예상하고 이미 지난 3월 채권을 7억5000만달러 발행해 ‘총탄‘을 마련했다. 지역 언론인 하버드매거진은 “하버드대가 발행한 채권은 10년 만기고 금리는 연 4.609%로 책정됐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인) 2022년 이후 하버드대가 처음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미 국채 금리보다 0.47%포인트 높은 정도의, 매우 낮은 금리로 발행됐다”고 보도했다. 채권 금리는 발행 기관의 부도 위험이 작을수록 내려가는데, 하버드대를 신뢰하는 투자자들 덕분에 비교적 낮은 금리로 채권 발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하버드대의 강경한 태도는 비슷한 이유로 보조금 삭감 위협을 받는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하버드대를 포함해 컬럼비아·브라운·펜실베이니아·프린스턴·코넬·노스웨스턴대 등 일곱 대학이 트럼프 정부의 표적이다. 컬럼비아대는 앞서 4억달러 규모 보조금 중단 협박을 받고 정부 요구의 상당수를 수용했지만, 하버드대의 대응이 알려진 뒤 클레어 시프먼 임시 총장이 “교육기관으로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모든 합의를 거부하겠다”는 성명을 내 태도 변화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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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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