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쥐 드나들고, 전기도 끊겨… 50년 된 흙집서 사는 형제 사연

0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성필(55·가명)씨와 10대 쌍둥이 형제가 살던 50년된 흙집의 상태. /이랜드복지재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한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작된 관심으로 따뜻한 가정을 되찾은 사연이 전해졌다.

16일 이랜드복지재단에 따르면, 권성필(55‧가명)씨와 쌍둥이 수민‧수빈(15) 형제는 작년 여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던 경기도 포천의 50년 된 흙집으로 이사 왔다. 벽을 지탱하는 흙은 부서져 내리고, 처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쥐들이 드나들고, 노출된 전기선은 언제든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만이 세 사람이 머무를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권씨는 몇 년 전 건설 현장 사고로 한쪽 눈이 실명됐다. 여기에 폐 수술까지 받은 후로는 체력이 크게 저하되어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건설 현장에서 월 10일 정도 일하며 채 100만원도 되지 않는 수입으로 두 아들을 키우려다 보니 월세집도 이들에게는 사치였다.

겨울이 되면서 오래된 흙집의 문제는 더욱 커졌다. 전기료 미납금이 500만원을 넘어서며 전기가 끊겼고, 낡은 보일러는 고장 난 상태였다.

형제를 더욱 힘들게 만든 건 임시방편으로 만든 화장실이었다. 단열이 되지 않아 입김이 하얗게 서릴 정도였고, 전등도 없어서 밤에 사용하는 건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수민이는 “주전자에 물을 받아 끓여서 세수했는데, 너무 추워서 그 물마저도 금세 식어버렸다”며 “어두워서 무섭기도 했다. 화장실 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위기를 눈치챈 담임 선생님의 연락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씻지 못하는 상황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도 큰 지장을 줬다. 친구들은 냄새가 난다며 수민이와 수빈이를 멀리했고, 이로 인해 두 형제는 점점 더 위축되어 갔다.

이들의 변화를 처음 감지한 건 형제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친구들과 멀어지고 수업 참여도가 떨어지는 두 형제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주민센터에 아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고, 이는 지역 복지관으로 연계됐다. 학교에서 시작된 관심이 주민센터와 민간단체의 협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제는 웃으면서 빨래도 해요”

가족의 어려운 사정을 접한 이랜드복지재단은 ‘SOS 위고’ 프로그램을 통해 긴급 지원에 나섰다. 우선 200만원으로 전기 요금 미납금 일부를 해결해 전기 공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았던 보일러도 수리했고, 동절기를 버틸 수 있는 임시 생계비도 지원했다.

이와 함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한 아이들의 정기 후원도 이어졌다. 지역 복지관에서는 주말마다 반찬을 지원해주어 권씨와 두 아이가 반찬 걱정 없이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가족의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 수민이와 수빈이는 매일 씻을 수 있게 됐고, 깨끗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수빈이는 “형이 주말마다 빨래를 하고, 저는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우며 가족의 정을 키워나가고 있다.

수민이는 재단에 보낸 편지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던 낡고 허름한 집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어서 좋다”며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셔서, 그리고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가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