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에서 사는 80대 할머니가 쓴 편지. 곡성군이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추진한 고향사랑 지정기부 ‘마을 빨래방 프로젝트’에 1억8860만 원이 모금돼 목표액을 9개월 만에 초과 달성했다. 곡성군 제공 |
“내가 곡성으로 시집올 때만 혀도 시어머니가 형님네 애들 오줌싸개 이불 빨래까지 시켜서 마을 빨래터에 가서 힘들어가꼬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요. (중략) 우리 마을에 이불 빨래방 맹그러 줘서 참말로 고맙소잉. 다들 복 많이 받을 것이오.”
시골 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지난날에 대한 서러움과 함께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학교에 갓 입학한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는 할머니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까지 더해져 정겨웠다.
전남 곡성군 입면 흑석마을에 사는 80대 할머니 ‘담양댁’이 고향사랑 기부자들에게 손편지를 보낸 것은 지난해 8월. 신규 고향사랑 지정기부 사업 발굴에 나선 곡성군은 고령화에 따른 시골 마을 어르신들의 불편을 덜어줄 사업을 찾다 ‘어르신 돌봄을 위한 마을 빨래방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는 곡성의 60대 이상 인구 비율이 50% 이상이면서 전국 평균보다 홀몸 노인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추진됐다. 어르신 가구의 빨래 고민을 해결하면서 홀몸 노인의 근황을 파악할 수 있는 형태의 빨래방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해 7월부터 지정 기부 모금을 시작했다. 사업에 동참할 이들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곡성군은 지역에 사는 할머니의 손 편지를 기부자들에게 보냈다.
할머니는 편지에 “지금이야 시상(세상)이 좋아져서 세탁기가 있서서 글지만 나도 인자 나이가 80세가 넘어강께 무릎이랑 허리가 아파서 집에서는 빨래를 아예 못허요”라며 “일 년에 한 번만 마을에 빨래 차가 온께 이불을 장롱에 넣어 놓고 아예 꺼내질 안허요. 나는 얇은 이불을 장판 위에 놓고 내내 살고 있소”라고 적었다. 이어 “근디 우리 마을 이장이 이불 빨래하는 곳이 생긴다고 합디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요. 자식들 명절에 올 때도 맘 놓고 이불 꺼내놓고 쓰라 하고 가면 빨고 내 이불도 때 되면 빨고 말이요. 여러분님들 덕택에 얼마 안 남았지만, 편히 살다 가겠소. 징허게 감사허요”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곡성군은 이 기부금을 활용해 고령화율이 높은 지역 2곳에 마을 빨래방을 설치하기로 했다. 빨래방에는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 등을 갖출 예정이다. 또 배송 차량 1대와 빨래방 운영단을 꾸려 어르신 가구의 빨래를 수거하고 배송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조상래 곡성군수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고충 중 하나가 이불 빨래인데 대부분 큰 가정용 세탁기가 없고 이동 세탁 서비를 받는 것도 여의치 않아 빨래방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지역에 도움이 되는 소아과 상주의사 인건비 모금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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