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서울의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11포인트 상승한 131.5를 기록했다. 1월에 110.4였다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때문에 3월에 136.1까지 상승했다가 내렸는데, 다시 오르고 있다(115 이상이면 상승 국면으로 구분한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10여 일 만에 2조원 가까이 늘었는데, 주택담보대출 때문이었다. 내년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의 절반 수준인 데다, 지난 3년간 인허가 실적 역시 예년의 절반 이하라서 시장은 요동칠 준비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국 아파트 공급은 이전 정부보다 많았지만, 지방 물량이 대부분이라 서울 공급난을 해소하지 못했었다. 지난 정부도 서울 주택 공급을 풀지 못했다. 기준금리가 하반기에 추가 인하될 경우, 주택 가격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할 것 같다.
영등포 동쪽을 의미하는 영동(永東) 개발은 60여 ㎢의 면적에 60만 인구의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계획으로 1960년대 후반에 시작해 1985년 종료됐다. 1985년 우리의 1인당 소득은 2300달러였고, 서울 인구는 963만명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인구는 그때와 비슷하며, 지금이 5만명쯤 더 많다. 그동안 1인당 소득은 15배 이상 증가했고, 강남 3구 면적은 120㎢ 정도로 영동보다 두 배쯤 늘었다. 소득이 올랐지만 제2, 제3의 강남을 더 만들지는 못했다. 1990년대 초 분당을 조성했으나, 이후엔 그런 대형 공사가 없었다. 그사이 교육, 의료, 쇼핑, 문화 등 사람들이 선호하는 시설은 강남에 집중돼 버렸다.
1990년대 초부터는 서울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했고, 이제 전체 주택의 9% 정도가 공공이 관리하는 임대주택이다. 서울의 자가 비율이 아직 절반에 못 미치니 민간임대가 대략 40%를 상회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10% 이상이었던 금리는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하락해 2009년엔 2%대가 됐다. 민간임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세는 이때부터 월세로의 전환이 자연스러웠는데, 당시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전세자금대출을 보증해주기 시작했다. 2015년께부터는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을 견인하기 시작한다. 생애최초,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전세자금대출로 인해 매매와 전세가 함께 오르는 패턴이 생겼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낮은 보유세, 높은 거래세를 고집했으며,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시행하면서 다들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게 만들어버렸다.
소득에 비례해 살고 싶은 곳을 못 만든 데다,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들이 의도와는 달리 집값을 높여 왔다. 이제 서울 주택은 금융자산이 됐다. 지난 몇 년간 정부가 발표한 공급 대책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게 많았다. 군 골프장을 밀고 아파트를 지으려다 교통 체증을 우려한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대체 용지를 정하지 못한 차량기지 이전을 전제로 대형 단지를 구상했으며, 용적률만 높여주면 재건축은 저절로 되는 듯이 발표했다. 곧 공급 대책이 나올 듯한 분위기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실현 가능한 공급 대책을 기대한다. 공급 폭탄만으로 집값을 잡으려는 생각도 바꿔야 한다. 집값은 공급과 금리, 세제가 혼합된 칵테일 요법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