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국악관현악단 '장단의 재발견'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작곡가 이하느리(왼쪽)와 지휘자 최수열이 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장단의 재발견' 공연 중 연주할 신곡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악은 고루하고 현대음악은 난해해 듣기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국악과 현대음악은 팝, 무용, 패션, 미술 등 다양한 장르와 뒤섞이고 동시대성을 더해 어느 때보다도 감각적이고 지금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다.
지난 26일 최수열이 지휘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장단의 재발견'은 국악기가 연주한 새롭고 놀라운 현대음악 공연이었다. 전통의 계승과 변화를 통한 발전을 꾀하는 국악관현악단은 한국 전통악기를 서양음악 관현악단처럼 조직해 합주하는 단체다. 악보도 정간보가 아닌 오선보를 쓰고, 국악 작품을 창작해 연주한다. 이날 프로그램은 정악풍의 서주와 전통 장단을 대표하는 김희조의 '합주곡 3번'과 이하느리의 '언셀렉티드 앰비언트 루프스 25-25(Unselected Ambient Loops 25-25)'였다. 창작 국악 개척자가 남긴 고전에 이어 감상한 19세 작곡가의 작품은 첫 악장부터 큰 대비를 이루며 신선하고 즐거운 충격을 주었다.
타악기로부터 시작한 리듬 위에 엇갈리며 쌓이고 덧입혀진 음색과 음향은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장르 음악을 만들었다. 공간감을 표현하는 음색과 음향은 팝에서 중요하게 다뤄 온 공감각적이고 명상적인 '앰비언트' 개념이 상기될 만큼 부각됐다. 반복적 리듬과 박자가 만들어낸 속도감과 변칙, '루프스' 역시 전통음악의 틀에서 자유로웠다. 작품 제목을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테크노,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에서 혁신적 사운드를 리드해 온 아티스트 에이펙스 트윈의 '셀렉티드 앰비언트 워크스 85-92(Selected Ambient Works 85-92)'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니, 국악기라는 재료를 바라본 작곡가의 관점부터 신선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연상되는 4악장에서는 4분 동안 소리 없이 연주를 쉬어 갔고, 7악장에서는 메시앙이 '투랑갈릴라 교향곡'에서 보여준 리듬 패턴을 오마주했다. 편견 없이 펼쳐낸 젊은 작곡가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45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꽉 채웠다.
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연주된 이하느리 작품 '언셀렉티드 앰비언트 루프스 25-25'의 4악장 인터미션은 연주 없이 4분의 시간이 카운트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창작자 위한 더 많은 무대 열려야
이하느리는 비니를 즐겨 쓰는 19세 작곡가다. 홍인기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작곡가 이하느리는 2006년생이다. 2021년 1월,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한 콘서트에서 이하느리의 '2 클라비어슈트케, 2020(2 Klavierstucke, 2020)'을 연주하며 그를 알렸다. 당시 임윤찬은 16세, 이하느리는 겨우 14세였다. 임윤찬이 극찬했던 이하느리는 2023년, 세계적인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헝가리의 버르토크 국제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무대에도 알려졌다. 임윤찬은 올해 리사이틀 프로그램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무대마다 이하느리에게 위촉한 '라운드 앤드 벨베티 스무스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를 연주했다. 오는 14일과 15일 피아니스트 손민수, 임윤찬 듀오 리사이틀에서는 이하느리가 편곡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모음곡을 연주한다.
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펼쳐진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장단의 재발견' 공연이 끝난 후 작곡가 이하느리가 무대에 올라 연주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양음악 작곡가로 성장해 온 이하느리에게 국악기는 관심은 있었고 언젠간 써 보고 싶었지만, 음색에 대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저장할 시간이 부족했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이하느리를 포함한 젊은 작곡가 2인에게 상주 작곡가 자리를 제안했다. 작곡가는 소리에 대한 연구를 심화할 수 있고, 관현악단은 새로운 흐름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지휘자 최수열은 "국악관현악단의 시도와 작곡가들이 만들어 낼 작품이 '한국적이냐 아니냐'를 묻는 질문은 이제 의미가 없다. 서양음악 지휘자, 서양음악 작곡가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실험하려는 과정 역시 동시대 한국음악의 현주소이고, 현대음악 작곡가에게는 한국적인 재료를 충분히 고민하고 작품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했다.
상주 음악가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공연 기회를 가짐으로써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신진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 작품을 창작하고 실연 기회를 제공하는 '작곡가 아틀리에'라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2014년부터 운영해 왔다. 신작이 만들어지고, 이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는 것은, 좋은 연주자들을 무대에 세워 모차르트와 바흐를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오는 3일 동시대 작곡가들의 주요 작품을 소개해 온 예술의전당의 기획 시리즈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도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피에르 조들로프스키, 비토 주라이의 작품과 함께 이하느리의 신작 '애즈 이프……아이(As if……I)'를 만날 수 있다.
객원기자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