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케미컬 로맨스, 2006년 3집 ‘블랙 퍼레이드’(The Black Parade) 발매
MCR(My Chemical Romance) 세계관의 정수…세계 정상 뮤지션 반열로
2013년 공식 해체 이후 6년 만에 재결합…오랜 침묵 깨고 세계 투어로 복귀
무의미, 혹은 죽음을 수용하면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통찰은 어떤 예술가들에게 격렬한 감정 서사를 통해 무대 위 퍼레이드로 변주되어 나타났다. 2006년 발매된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의 ‘블랙 퍼레이드’(The Black Parade) 속 죽음을 앞둔 남자의 회고와 절규는 카뮈의 철학과 미묘하게 닮아 있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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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 속 시지프의 반복을 ‘부조리’(absurde)라 명명했다. 삶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며 인간은 그 무의미함을 깨닫는 존재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없음’ 속에서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행위가 계속되는데, 그것이 곧 ‘실존’이라는 것이다.
카뮈의 부조리 철학은 소설 ‘이방인’(L‘Étranger)에서도 반복된다.
‘햇빛이 눈부셔서’ 살인을 해 사형을 선고받은 뫼르소는 삶의 마지막 순간, 어떠한 대답도 의미도 주지 않는 세상의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실존적 자의식을 보여준다. 이는 삶의 의미가 인간 존재 안에 있다는 실존주의적 인식의 반영이며, ‘의미’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살아내는 행위 그 자체에서 생성된다는 철학적 주장이다.
무의미, 혹은 죽음을 수용하면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이 단단한 통찰은, 어떤 예술가들에게는 고요한 철학이나 사유가 아닌 격렬한 감정의 서사를 통해 무대 위 퍼레이드로 변주되어 나타났는데, 2006년 발매된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의 ‘블랙 퍼레이드’(The Black Parade) 속 죽음을 앞둔 남자의 회고와 절규는 카뮈의 철학과 미묘하게 닮아 있다.
MCR은 바로 이 ‘블랙 퍼레이드’라는 앨범을 통해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으며 당시 록 음악 씬의 한 축이었던 이모코어(Emocore) 장르 뮤지션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독보적인 반열에 우뚝 올라서게 된다.
During this operation
Found a complication in your heart, so long
Maybe just two weeks to live”
(소견대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금 전 수술 도중
심장에 이상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대략 2주 정도 살아있을 듯한데
부디 조심히 가시길)
- My Chemical Romance ‘죽음’(Dead!) -
MCR은 ‘블랙 퍼레이드’라는 장례식과 축제가 뒤섞인 모순된 이미지를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기괴하게 비틀어내는데, 이러한 형태의 가공은 MCR이 데뷔 이후 줄곧 추구해왔던 ‘감성적인 고스(Goth)’, 즉 이모코어라는 장르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슬픔과 기념, 종말과 환희가 공존하는 ‘불협의 미학’을 상당한 완성도의 ‘청각적 내러티브’로 구체화해냈다. [게티이미지/Photo by Na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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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행진에 온 걸 환영해”…‘장례’라는 축제, ‘죽음’이라 불리는 존재의 영속(永續)
앨범 전체의 곡들이 하나의 서사 구조를 따르는 ‘블랙 퍼레이드’는 병상에 누워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시점, 첫 번째 트랙인 ‘끝.’(The End.)에서 시작된다. 남자는 자신에게 도래한 죽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한 채 혼란과 거부로 반응하며 삶에 대한 독한 회의를 품는다. 그러던 중 그는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퍼레이드’에 대한 기억으로 이동해 자신의 인생을 더듬어 올라가면서, 감정의 파편들을 되짚고 실존의 본질에 도달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앨범의 타이틀이자 핵심 주제를 나타내는 ‘퍼레이드’(축제 또는 행진)라는 메타포는, 남자가 삶의 목적으로 부여받은 소명의 기원이자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역설적인 방식으로 상징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MCR은 ‘블랙 퍼레이드’라는 장례식과 축제가 뒤섞인 모순된 이미지를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기괴하게 비틀어내는데, 이러한 형태의 가공은 MCR이 데뷔 이후 줄곧 추구해왔던 ‘감성적인 고스(Goth)’, 즉 이모코어라는 장르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슬픔과 기념, 종말과 환희가 공존하는 ‘불협의 미학’을 상당한 완성도의 ‘청각적 내러티브’로 구체화해낸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심리적, 감정적 단계에 따른 전개로 이어지는 14개의 곡들은 각각 하나의 장면(Scene)처럼 기능하며, 감정의 진행 단계와 내면의 이동을 드라마틱하게 연결, 특히 MCR은 이 흐름을 통해 ‘한 인간의 실존 서사’를 완성시킨다.
“Your misery and hate will kill us all
So paint it black and take it back
Let‘s shout it loud and clear
Defiant to the end, we hear the call”
(너의 비참함과 증오는 결국 우리 모두를 죽일 거야
그러니 그 절망과 미움을 새까맣게 칠해버려
그리고 저항을 되찾아 오자
크고 분명하게, 끝까지 외쳐
소환의 소리가 들리잖아)
- My Chemical Romance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Welcome to the Black Parade) -
이승을 떠나는 자를 위한 환송식, 살아남들 자들이 이어갈 감정의 집합, 죽음을 기리는 축제의 모습은 앨범의 타이틀 곡인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Welcome to the Black Parade)에서 정점을 이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죽음의 순간에 직면해 삶 전체를 관통하며,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감정의 서사를 응축하는데, 이를 통해 후술할 실존주의를 골자로 한 철학적 구조를 제시하는 데까지 성공한다. [마이 케이컬 로맨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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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소환되는 생(生)의 의미…“너의 기억이, 너의 존재를 짊어진 채 나아갈 거야”
앨범의 5번째 트랙인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에서의 죽음은 인간 존재의 종말이 아닌 삶의 의미를 증폭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 후렴구와 클라이맥스 백보컬에서까지 흡사 의식(ritual)처럼 등장하는 “우리는 계속 될 거야”(We‘ll carry on)와 “너의 기억이, 그걸 나아가게 할 거야”(Your memory will carry on)의 반복은 생존의 여부를 넘어서는 실존의 연속성처럼 울려퍼지며, 삶의 불가피한 소멸 앞에서도 존재의 총체적 흔적인 ‘기억’이라는 형태로 인간 존재의 삶이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아들아, 부서지고 짓밟히고 저주받은 이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겠니?”(Son, when you grow up would you be the savior of the broken, the beaten and the damned?)라는 말을 되뇌이던 남자가 돌연 저항하듯 외치는 “난 영웅이 아니야, 소년이고 인간일 뿐. 그딴 건 아무 상관없어”(I’m not a hero, I’m just a boy, I’m just a man. I DON’T CARE!)라며 울부짖는 부분은 사실상 곡에서 가장 강렬한 주제의식을 가진 파트로, 자아를 신화화하거나 영웅시하지 않겠다는, 부조리 앞에서 삶을 포장하지 않으려는 결의이자 반역이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사형을 앞두고 군중을 향해 “그들과 하나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과도 연결되는데, 이는 죽음 앞에서조차 외부의 의미 부여를 거부하고 ‘살아냈던 자’로서 죽음을 수용하겠다는 실존적 자의식의 각성과도 닮아 있다.
다만 비극의 정점인 죽음 앞에서 피어나는 낙관, 죽음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 아닌, 죽음을 통과하며 감정과 기억을 계승하는 인간의 존재의 위엄을 장렬하게 표현하는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 감정선의 절정은 다름 아닌 곡을 이끌어 가는 제라드 웨이(Gerad Way·보컬)의 보컬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삶 전체를 토해내듯, 자신의 일부를 헌납하듯 모든 걸 쏟아내는 그의 보컬은 곡 안에서 의식을 제의(祭儀)처럼 봉헌하는 역할에 가까운데, 장례와 회상, 그리고 재탄생이라는 혼(魂)의 순환 구조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완성된다.
“And through it all, the rise and fall, the bodies in the streets
And when you’re gone, we want you all to know
We’ll carry on, we’ll carry on. And though you’re dead and gone, believe me
Your memory will carry on”
(그 모든 흥망성쇠를 지나
거리 위에 널브러진 시신들
어쨌든 너도 떠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우린 계속해서 너의 기억을 이어갈 거야. 우린 끝까지 그걸 품고 갈 거야”
- My Chemical Romance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Welcome to the Black Parade) -
죽음 앞에서 피어나는 낙관, 즉 무력한 인간이 아닌, 죽음을 통과하며 감정과 기억을 계승하는 인간의 존재의 위엄을 장렬하게 표현하는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 감정선의 절정은 다름 아닌 곡을 이끌어 가는 제라드 웨이(Gerad Way·보컬)의 보컬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삶 전체를 토해내듯, 자신의 일부를 헌납하듯 모든 걸 쏟아내는 그의 보컬은 곡 안에서 의식을 제의(祭儀)처럼 봉헌하는 역할에 가까운데, 장례와 회상, 그리고 재탄생이라는 혼(魂)의 순환 구조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완성된다. [마이 케이컬 로맨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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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부르는 ‘영혼의 외침’…“관객들은 노래를 통해 나의 피를 바라본다”
‘하나의 노래’를 불러낸다는 건 관객(혹은 청자)에게 수 분 간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 이상으로 대단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작업이다. 기억과 감정, 욕망을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해 적절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외부에 형태화시키는 작업인 가창(歌唱)은 추상적이고 흩어지기 쉬운 감정과 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드나들며 ‘날 것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인데, 이 과정에서 가창자는 내면 속 스스로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해체한 뒤 재생성하는 경험을 거친다.
여기에 가사 자체가 죽음과 상실, 구원과 기억이라는 무거운 테마의 감정들을 다루다보니 정서적인 탈진도 심하다. 인간과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사유가 깊은 주제인 만큼 감정의 가장 깊은 층위까지 내려갔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곡이다 보니 실제 공연 영상 속의 제라드 웨이는 곡의 중후반 이후부터는 신체적으로 탈진돼 있는 것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기진맥진해진 것이 그대로 시야에 드러난다.
그럼에도 제라드 웨이는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 속 남자와 자신의 존재를 동일화시키며 그가 지나온 고통과 상실, 기억과 사랑을 온몸으로 복기해낸다. 쉰 목소리와 불안정한 음정, 토해내듯 쏟아내는 그의 보컬은 정제된 기교와는 거리가 멀지만 감정 그 자체를 육화한 발화로써 ‘감정의 미학’을 인간적 결함과 충동의 리듬으로 구축해내는데, 그의 보컬로 인해 이 곡은 ‘부르는 노래’ 이상의, 죽음을 관통한 존재가 삶을 향해 다시 걷는 하나의 구조 서사, 제라드 웨이만이 가능한 실존의 의례이자 회상의 제의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 한 곡의 끝에서, 죽음을 넘은 실존이 되살아나 다시 한 번 시지프의 돌을 밀어 올린다.
“Do or die, you’ll never make me (We’ll carry on)
Because the world will never take my heart (We’ll carry on)
Go and try, you’ll never break me (We’ll carry on)
We’ll carry on”
(죽음이 되든 무엇이 되든, 너는 결코 나를 규정할 수 없어 - 우리는 나아갈 거야 -
무슨 일이 있든 세상은 내 마음을 앗아갈 수 없어 - 우리는 나아갈 거야 -
얼마든지 무너뜨려 봐. 난 절대 부서지지 않아 - 우리는 나아갈 거야 -
우리는, 나아갈 거야)
- My Chemical Romance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Welcome to the Black Parade) -
제라드 웨이는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 속 남자와 자신의 존재를 동일화시키며 그가 지나온 고통과 상실, 기억과 사랑을 온몸으로 복기해낸다. 쉰 목소리와 불완정한 음정, 토해내듯 쏟아내는 그의 보컬은 정제된 기교와는 거리가 멀지만 감정 그 자체를 육화한 발화로써 ‘감정의 미학’을 인간적 결함과 충동의 리듬으로 구축해내는데, 그의 보컬로 인해 이 곡은 ‘부르는 노래’ 이상의, 죽음을 관통한 존재가 삶을 향해 다시 걷는 하나의 구조 서사, 제라드 웨이만이 가능한 실존의 의례이자 회상의 제의로 완성된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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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이 아닌 출발점이다. 죽음과 무의미를 직시한 순간 기억은 전복되고 존재는 결국 본질에 닿는다. 그리고 끝내 스스로의 목소리로 삶을 선언한다. 그 노래는 통렬하면서도 역설적인 방식으로 삶을 찬미하며, 죽음을 통과한 존재는 살아남은 자로 돌아온다.
아무 의미도 없는 세계에 스스로 의미를 새기는 ‘부조리의 노래’.
정점에 닿은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는 또 한 번 돌을 밀어 올린다. 죽음과도 같은 삶의 무의미한 반복은 형벌이 아닌 살아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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