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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하기 앞서 전한길 씨와 대화하고 있다. 2025.05.21. hwang@newsis.com /사진=황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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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01년 3월4일 미국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나라가 됐다. 제2대 대통령이자 연방당 소속이었던 존 애덤스는 선거에서 패하자 날이 밝기도 전에 워싱턴D.C.를 조용히 떠났다고 한다. 불과 몇 시간 뒤 민주공화당 소속의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의 제3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한 인류사적인 사건이었다.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것은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길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정권의 이양이 당시엔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이었던 것이다.
뉴욕대 정치학 명예교수인 아담 쉐보르시크는 "민주주의는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도 저서 '극단적 소수는 어떻게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힘은 선거가 아니라 패배를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즉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믿음이 무너지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2.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 끝내 권좌에서 쫒겨날 빌미가 된 이 극단적 선택은 '패배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같은 해 치러진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패배, 그에 앞선 총선 참패,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압도적인 지지율이 정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정치적 패배를 국가적 위기로 확대 해석한 것이 윤 전 대통령이 몰락한 이유다.
이러한 두려움은 지금도 국민의힘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당 주변에는 여전히 대선 불복, 부정선거, '윤 어게인'(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외치는 이들이 맴돈다.
심지어 이들 세력의 대표격인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본명 전유관)씨까지 입당해 전당대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핵심 지지층 이탈 가능성과 차기 집권 불확실성, 향후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갈등 우려까지 겹쳐 당내에선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강화된다.
#3. 국민의힘은 아직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명확하다. 황교안 등의 '부정선거론자'을 배격하고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극우 아스팔트 세력'과 절연한 결단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과거와 선을 긋자 길이 보였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거리로 나갔다. '을지로위원회'(을 지키는 위원회)를 꾸려 바닥부터 민심을 다졌고 결국 2017년 다시 집권했다. 이런 '회복' 역시 '패배 인정'에서 출발했다.
민주주의는 패배를 인정할 때 작동한다. 야당은 본디 불편하다. 소수 야당으로 버텨야 하는 것은 더욱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정치의 목표는 권력투쟁의 승리다. 하지만 지는 법을 알아야 다시 이길 수 있다.
국민의힘 새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패배의 원인을 냉철히 직시해 그런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극단과 결별하며 건강한 보수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해야만 2022년과 같은 부활의 길이 다시 보일 것이다.
머니투데이 더300 민동훈 차장 |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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