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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화)

[기자수첩]美관세 정책에 무릎 꿇은 韓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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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제 미국 수출길은 그냥 막혔다고 봐야죠."

최근 만난 한 주방용품 업체 실무자는 이같이 말하며 "중국 현지 업체와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져 중국 납품도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과 안산에 거점을 둔 이 회사는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을 소재로 한 주방용품을 만들어 대부분을 수출한다. 최대 수출국인 미국 판로가 막히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자와 만난 날도 그는 인도네시아 현지 업체와 수출 계약을 맺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낸 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지난 12일(현지시간)부로 발효한 철강·알루미늄 25% 추가 관세 조치의 파급력은 이미 국내 기업들에 혹독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철강·알루미늄 파생제품 총 259개가 추가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 정책의 잔인하고 집요한 구석도 여기 있다. 당초 관세 대상이었던 건축자재 등 일반적인 알루미늄 제품만이 아니라 낚시·주방·전기·전자·기계류·자동차·항공·반도체 부품 등 기타 파생상품까지 모두 포함됐다. 한마디로 알루미늄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제품은 모두 25% 추가 관세 대상이 된 것이다.

알루미늄은 가볍고 강한 데다 가공까지 쉽다는 장점 덕분에 널리 쓰여 파급력도 크다. 한국은 대미 철강 수출량 순위에서 4번째, 알루미늄은 3번째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국가다. 4월2일 시행되는 상호관세 정책의 파급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미국이 아닌 아시아와 유럽 등 신규 매출처로 판로를 뚫어야 한다. 단가 경쟁은 물론 제품 경쟁력까지 중국에 뒤처진 한국 소비재 제품들의 입지는 더 좁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통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에 불을 붙이기 전부터 이미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강화하는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목격해왔다. 일례로 인도네시아는 2023~2024년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 삼아 수입 규제를 잇달아 강화했다. 예전에는 인도네시아 직수출이 가능했다면, 이젠 현지 대형 유통업체, 구매조합, 소매점 등 ‘디스트리뷰터’(유통 파트너)를 껴야 한다. 일명 ‘통행세’다. 늘어난 비용은 그대로 비관세 장벽이 된다.

캐나다와 유럽연합(EU) 등은 미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에 즉각 반발하며 보복 관세로 맞섰다. 반면 우리 정부는 신중을 기하며 물밑 협상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방미 일정을 꾸리는 등 현 정부 역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자타공인 ‘거래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부디 한국의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협상의 묘를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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