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가 앞에서 끌어주니 민주당원들은 21일 전매특허인 탄핵소추안 발의로 최 권한대행을 위협한다. 그간 헌재에서 인용률 ‘제로(0)’의 폐해를 익히 알면서도 또다시 탄핵 카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부근 광화문 민주당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25.03.19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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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후 이틀 뒤 탄핵소추된 감사원장과 서울지검장 등 4명은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전원일치 기각 결정을 받아 무려 98일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그동안 대행 체제로 이들의 공석을 메워온데 따른 국정 차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이들 4인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보단 낫다. 박 장관은 지난 18일 탄핵소추된지 96일만에 첫 변론이 열렸는데 겨우 2시간 하고는 끝났다. 선고일은 미정이지만 기각 결정으로 복귀한다면 업무 공백 기간은 족히 100일을 넘길 것이다.
박 장관보다 더 열 받는 사람도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박 장관과 지난해 12월 12일 같은 날 탄핵소추되고도 아직 변론 기일조차 못 잡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분개할 만한 축에 든다. 지난달 19일 한차례 변론을 끝낸 헌재는 선고를 질질 끌다가 오는 24일로 정했다. 이날 기각이 된다면 한 총리는 87일만에 복귀하게 되는데, 대통령 1순위 권한대행마저 탄핵해 초유의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를 만든 민주당은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작년 말 국가 운명이 경각에 달린 와중에 총리와 감사원장·서울지검장·법무부장관·경찰청장까지 기어이 ‘탄핵 테러’를 가해야 했는지 민주당은 돌아봐야 한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탄핵심판 1회 변론에 출석해 있다. 25.03.18 이승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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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탄핵은 이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한때 탄핵은 입에 올리기에 무시무시한 단어였지만 이젠 초등학생들도 자기네 반장을 탄핵한다고 떠들 정도다. 앞으로도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 국정 발목을 잡기 위해 탄핵을 남발할 유인을 떨치긴 힘들 것이다. 민주당이 탄핵의 유용성을 맘껏 보여준 전례를 다른 정당들도 답습해갈 것이 뻔하다.
헌법은 제65조 3항에서 ‘탄핵소추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헌법 제정자들은 국회가 지금 같은 탄핵소추 남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탄핵소추 요건으로 같은 조 1항에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제한을 뒀지만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한테 통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무차별 탄핵에 따른 국정 폐해를 막으려면 소추만으로 직무정지가 안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와 여당 발목을 잡는 효과가 떨어져 야당이 탄핵을 겁박할 유인이 줄어들 것이다. 다만 헌법상 직무정지 규정은 개헌을 통해 떼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챙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탄핵소추 1차 변론기일에 착석하고 있다. 25.03.18 이승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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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탄핵심판이 기각되면 소추안을 낸 의원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법도 있다. 국민의힘이 제기한대로 탄핵이 기각되면 해당 의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다. 만일 한차례 소추 행위에 바로 벌칙을 주는 게 과하다면 ‘기각된 탄핵소추안 누적 발의 몇 회부터’ 같은 제한을 두면 어떤가. 아니면 정당별로 국회 임기동안 소추안 발의 횟수를 정해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가 되어버린 탄핵이 원래의 무게감을 갖도록 정상화시키는 작업이 절실하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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