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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서울 도로의 27%, 언제 꺼질지 모르는 싱크홀 위험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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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 오토바이 운전자 숨진채 발견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영외고 앞 도로에 생긴 가로 18m, 세로 20m, 깊이 18m 규모 대형 싱크홀(땅 꺼짐 현상)에 매몰됐던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34)씨가 25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싱크홀로 생긴 지반 침하 공간은 약 6500㎥로, 최근 5년간 발생한 싱크홀 중 둘째로 크다.

전문가들은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만들어진 상·하수도 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의 시설 노후화 문제가 심각해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발밑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본지가 서울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도로 구간 6863km(보도·차도 181개 노선) 중 26.95%(약 1850km)가 지반 침하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반 약화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집중호우가 본격적으로 내리는 장마철도 아닌 봄에 대형 싱크홀 사고가 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소방 당국은 싱크홀 사고가 난 지 18시간 만인 이날 오후 12시 36분 박씨를 수습했다. 박씨가 발견된 곳은 싱크홀 하부, 지하철 9호선 공사장 터널 구간 바닥 부근으로, 싱크홀 중심에서 왼쪽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추락 직전 입고 있던 복장과 헬멧, 바이크 장화를 착용한 모습 그대로였다. 소방 당국은 앞서 이날 오전 1시 37분쯤 싱크홀 아래 지하철 9호선 지하 터널 공사장에서 박씨의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이어 2시간 후인 오전 3시 30분에는 싱크홀 하부에 쌓인 토사 근처에서 번호판이 떨어진 오토바이도 발견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소방은 싱크홀에 매몰됐던 박씨를 구조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6480t에 달하는 토사가 물과 섞여 진흙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로 싱크홀 하단을 막았기 때문이다. 구조대원들은 잠수복을 입고 손으로 토사 수천 톤을 퍼내며 수색을 진행했지만, 싱크홀 인근 상단에 균열이 발견되고 약해진 지반으로 추가 붕괴 우려도 있어 한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다. 소방 당국이 포클레인 2대와 구조대원 17명 등을 투입해 밤샘 배수 작업을 진행한 결과, 이날 오전 박씨를 발견했다. 박씨는 대기 중이던 앰뷸런스로 옮겨져 인근 강동 중앙보훈병원으로 이송됐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조선일보

싱크홀로 추락하는 오토바이 운전자 - 지난 24일 오후 6시 29분쯤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도로에 발생한 싱크홀에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씨가 추락하고 있는 모습.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지인들에 따르면 2018년 부친을 사고로 잃은 박씨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먹여 살리겠다며 가장 역할을 도맡았다고 한다. 낮에는 광고 회사에 다니고 퇴근하면 부업으로 배달 일을 했다. 박씨는 이날도 부업으로 배달하던 중 변을 당했다. 구조 작업을 기다리던 박씨 모친은 현장을 떠나는 앰뷸런스 뒤편에서 “우리 애기 엄마가 깨워줘야 해” “내 새끼 데려가야 돼”라며 통곡했다.

이번 사고는 상·하수도나 가스·통신 등 지하 매설물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수관의 부식으로 만들어진 구멍으로 물이 새면서 하수관 주변 흙을 쓸고 지나가면, 땅속 동공(洞空·땅속 빈 구멍)이 조금씩 커지게 된다. 이 동공이 지상 충격 등으로 무너져 내릴 때 싱크홀이 발생한다. 국토교통부의 ‘전국 땅 꺼짐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6년간 전국에서 1060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는데, 원인으로는 상·하수도 손상이 542건(51.1%)으로 가장 많았다.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싱크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싱크홀 중심부는 지하철 공사장 입구에서 불과 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공사 현장 인근엔 상·하수관, 통신선, 가스관, 송전선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이재혁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장은 “지하철 공사와 싱크홀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강동경찰서는 싱크홀 발생 원인과 9호선 연장 공사 과정에서 건설사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반에 레이더를 쏴 지하 내부를 파악하는 GPR(지표 투과 레이더)이라는 기술로 서울 전역의 싱크홀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 기술로 서울시가 훑는 구간만 연간 7200㎞에 달한다. 그러나 서울시가 운용하는 현행 GPR 레이더로는 지하 2~3m 깊이의 싱크홀만 찾을 수 있어, 이번 사건처럼 더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탐지하기가 어렵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시민들의 생명을 정말로 위협하는 싱크홀은 현 GPR 기술로는 탐지하기가 어렵다”며 “예산을 더 투입해 더 깊은 지하까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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