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갯벌 습지보호지역에서 염생식물 식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화성환경운동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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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1일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갯벌. 조류 모니터링을 위해 이른 아침 현장을 찾은 철새·습지보호 전문가 나일 무어스 박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이 턱 막혔다. 갯벌 한가운데 포클레인 등 건설 장비 몇 대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고, 십수 명의 작업자들이 분주히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곳은 2021년 7월 해양수산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곳으로,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바닷새들이 날아들고 169종에 달하는 저서생물이 터를 잡은 곳이다. 철새 도래 시기엔 최대 2만 마리의 물새가 관찰되곤 했지만, 이날은 달랐다. 공사장의 쿵쾅거리는 굉음 속에서 새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무어스 박사와 정한철 화성습지세계유산등재추시민서포터즈(화성습지시민서포터즈) 집행위원장은 공항건설과 조류 충돌 위험성을 알리는 토론회 준비를 위한 현장 조사에 나섰다 이 현장을 처음 목격했다. 매향리 갯벌과 인접한 화성습지는 해마다 물새 15만 마리가 찾는 중요 철새 도래지이지만 최근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공항건설 시도에 이어 습지보호지역 위에서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갯벌 습지보호지역에서 염생식물 식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화성환경운동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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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들을 놀라게 한 현장의 정체는 갯벌 위에 염생식물 군락지를 재조성하는 ‘기아-블루카본 협력사업’이다. ‘블루카본’이란 해양 환경에서 탄소를 흡수·저장하는 수단을 말하는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현재 맹그로브 숲, 염습지, 해초 숲 등 세 가지를 블루카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식물이 없는 갯벌(비식생갯벌)은 식물이 자라는 염습지와 달리 블루카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기아자동차는 50억원을 전액 기부해 해양수산부·해양환경공단·한국해양재단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민간참여형 갯벌 식생 복원사업’(2023~2026년)을 진행 중이다. 과거 칠면초(갯벌에 서식하는 한해살이풀)가 자랐던 갯벌에 다시 이를 심어 탄소 흡수원을 늘리는 사업이다.
설계·시공을 맡은 해양환경공단은 지난 1월 식생복원을 위한 설계를 마치고 2월에 공사에 착수했다. 해양환경공단이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 공사는 매향리 습지보호지역 조간대 갯벌 위에 1.2㎞ 길이로 높이 3.6m의 나무기둥을 잇달아 박아 인공적인 울타리를 세워 유속을 감소시킨 뒤 칠면초를 심어 식생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울타리 총 1.2㎞ 가운데 900m가 설치됐고, 칠면초 ‘식생매트’ 10개가 울타리 안쪽에 설치됐다. 공단은 이것이 독일식 친환경 공법인 ‘라눙’(Lahnung)이라고 설명한다. 관목 울타리(Bush Fence) 혹은 낮은 제방이라 불리는 라눙은, 갯벌의 침식을 방지하고 퇴적을 촉진해서 염습지 형성을 돕는 구조물이다. 나뭇가지 등 자연재료를 활용해 환경친화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붉은어깨도요가 갯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화성호와 매향리 갯벌은 알락꼬리마도요, 붉은어깨도요의 중요한 서식지다. 정한철 집행위원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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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갯벌 습지보호지역에서 염생식물 식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화성환경운동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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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화성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이 사업의 입지 선정, 공사 기법 등이 갯벌과 생물에 끼치는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며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무어스 박사는 “이곳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알락꼬리마도요와 붉은어깨도요, 노랑부리도요의 서식지이자 멸종위기종 1% 이상이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중요한 습지”라면서 “수만 마리 물새가 서식하는 갯벌에 울타리를 쌓는 것이 과연 (블루카본 사업이 지향하는) ‘자연 기반 해법’(nature based solutions)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갯벌에 염생식물을 심기 위해 방조제를 쌓고 식생매트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이 갯벌에서 조류를 떠나가게 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연구나 대책 마련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한철 집행위원장은 “이들이 참조했다는 독일 와덴해의 사례는 200m 남짓한 울타리를 만들고 10년에 걸쳐 퇴적을 지켜보는 방식으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반면, 매향리 갯벌은 한번에 울타리 1.2㎞를 건설하면서 갯벌 위에 철판을 깔고 수 톤에 이르는 중장비가 진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갯벌 파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공사가 멸종위기 조류의 서식지 충실도(Site fidelity, 동물이 서식지를 계속 찾아오는 경향)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칠게·갯지렁이 등 다양한 저서생물에 악영향을 미쳤을 거라 분석했다. 해양환경공단은 한겨레에 “습지보호지역이지만 관련법에 따라 사업 진행을 예외적으로 승인 받았고, 지난해 1~2월 설계 단계에서 바닷새 조사를 진행했다”고 답했다. 당시 이들이 매향리 갯벌에서 확인한 바닷새는 괭이갈매기 168마리, 청둥오리 8마리였다.
지난 2023년 시작된 ‘기아-블루카본 협력사업’은 현재 마무리 단계로, 울타리 총 1.2㎞ 가운데 900m가 설치가 완료된 상태다. 사진은 지난 22일 모습. 화성환경운동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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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사는 매향리 습지보호지역 조간대 갯벌 위 1.2㎞에 3.6m(지상 높이 0.9m)의 나무기둥을 잇달아 박아 인공적인 울타리를 세워 유속을 감소시킨 뒤 칠면초를 심어 식생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화성환경운동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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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방식도 방식이지만, 빈 갯벌에 염생식물을 심는 정책 방향 자체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양수산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이루기 위해 2022년 1.1만톤이었던 해양 탄소흡수량을 2030년까지 106.6만톤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를 위해 △폐염전·폐양식장 갯벌 복원 △염생식물 식생 복원 △해조류 이식 등 바다숲 조성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 염생식물 식생 복원은 매향리 갯벌을 비롯해 충남 태안 근소만, 서산 가로림만, 전남 신안군, 제주 서귀포 성산읍에서 진행 중인데, 아이피시시가 인정하는 블루카본 범주에 포함시키기 위해 식물이 없는 ‘비식생갯벌’에 염생식물을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습지생태학전문가인 한동욱 가톨릭대 겸임교수는 “빈 갯벌 또한 탄소저장 능력·생물다양성이 높고, 실제로 갯벌에 식재하는 것은 비용대비 탄소저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염생식물을 복원한다면서 중장비 작업이 들어가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매년 해양수산부에서 구성하는 갯벌복원자문위원회에서도 이 같은 의견이 나온 바 있다고 한다. 다만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관계자는 “폐염전이나 매립지를 갯벌로 복원하는 방향이 더 낫다는 것 의견이 제기됐지만 현재 정책 방향이 수정된 것은 아니”라며 “갯벌 재생은 비용이 높고 대상지 선정도 까다로워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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