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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교수 600명도 들고 일어났다, 금가는 트럼프 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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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 정책, 민주주의 원칙 위배” 연판장 서명

법원은 연방기관 수습 직원 대규모 해고 제동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명칭을 변경한다고 밝혔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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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 명문대이자 지성의 산실로 불리는 하버드대학교 교수 600여명이 현재 대학가를 상대로 반(反)이스라엘 세력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교수들은 정부 뜻에 따르지 않으면 대학에 대한 연방 정부 지원금을 삭감하고, 반이스라엘 성향을 보이는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가는 현 정부 정책은 그동안 미국을 지탱해 온 민주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헌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더기 행정명령과 비판 언론 탄압, 삼권 분립을 무너뜨리는 법원 명령 무시와 막무가내식 관세 전쟁 등 지난 1월 취임 이후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주의 행보에 미국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27일 하버드대 학생신문인 하버드크림슨은 “월요일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하버드 9개 학부에서 600명 이상의 교수들이 대학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 서류는 하버드 이사회에 보내졌다. 9개 학부에는 컴퓨터 과학, 수학, 비교 문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포함됐다. 예술과학대학 소속 교수가 260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의대 소속이 110여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교수들은 연판장에서 만약 트럼프 정부가 하버드대의 자유를 위협할 경우 이사회가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미 대학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은 표현, 결사, 탐구의 자유를 포함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하버드가 (컬럼비아대 같은) 공격을 받는다면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작년 대학가에 퍼진 반이스라엘 시위의 진앙 역할을 했던 컬럼비아대에 연방 보조금 4억 달러(약 5800억원)를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컬럼비아대는 캠퍼스 내에 체포 권한이 있는 특수 경찰 36명을 고용하고 중동 연구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부총장을 임명하기로 하는 등 백악관의 요구에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시 전역의 학생들이 3월 24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연방 정부에 대한 대학의 양보에 항의하고 이스라엘로부터의 투자 철회와 마흐무드 칼릴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 컬럼비아대학교 모닝사이드 캠퍼스 밖에서 행진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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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교수들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나선 이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 되며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상황에 놓였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교수들이 서명한 연판장에는 “학문적 자유와 대학 자치권을 위협하는 불법적인 요구에 대해 법적으로 다투고, 따르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요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판장 작성에 관여한 하버드 로스쿨 니콜라스 보위 교수는 하버드크림슨에 “하버드와 같은 대학은 민주사회에서 정의의 힘으로 교육을 방어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보스턴글로브는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학계에서 나온 가장 주목할 만한 저항 행위 중 하나”라고 했다.

대학가에서는 이달 들어 이민 당국이 그동안 반이스라엘 입장을 대변해 온 학생들을 급습해 구금하는 상황이 연달아 발생하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일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작년 봄 대학가 시위를 주도한 컬럼비아대 학생 마흐무드 칼릴을, 17일엔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선전물을 퍼뜨리고 반이스라엘주의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조지타운대 박사후과정 연구원 바다르 칸 수리씨도 구금했다. 25일엔 터프츠대 박사과정생 뤼메이사 외즈튀르크를 체포했는데, 여러 명의 국토안보부 직원들이 대낮에 길을 걷던 그를 에워싸고 휴대전화를 뺏는 등 테러범 체포 작전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남미 가이아나를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대학가 반이스라엘 시위와 관련해 비자가 취소된 사람 수를 묻는 말에 “300명 넘을지도 모른다”며 “‘미치광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비자를 취소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27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 밖에서 팔레스타인 활동가이자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생인 마흐무드 칼릴의 구금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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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트럼프의 권위주의 행보는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미국 내에서조차 각종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정부효율부를 통해 연방 기관 수습 직원들을 대규모로 해고했지만 연방 법원이 “적법하지 않다”며 뒤집었다. 트럼프는 또 행정명령으로 미국에서 태어나면 국적에 상관없이 시민권이 부여되는 출생시민권제도를 폐지했지만 연방 법원에서 “위헌적 조치”라며 막아섰다. 그런가 하면 법원의 결정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삼권분립의 기반을 허무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5일 260여명의 불법 이민자를 엘살바도르로 추방하려 했지만 법원에서 ‘추방령 일시 정지’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이들을 그대로 추방했다. 사법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 트럼프는 오히려 판결을 내린 판사를 “좌파 미치광이”라고 비판하며 “탄핵해야 한다”고 공격에 나섰다.

경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막무가내식 글로벌 관세 전쟁과 반도체법 폐지 방침에 대해서는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화당 랜드 폴(켄터키) 상원의원은 “관세를 부과하면 무역은 줄고 가격은 상승할 것”이라며 관세 부과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같은 당 토드 영(인디애나) 상원의원도 트럼프의 반도체법 폐지 방침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독재 정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와 같은 행태도 벌어지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달 ‘멕시코만’ 표기를 ‘미국만’으로 변경한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AP의 대통령 집무실과 전용기 취재 등을 제한했다. 트럼프는 25일엔 국립 공영라디오(NPR)와 공영방송서비스(PBS)에 대해 “매우 편향돼 있다”면서 연방 기금 지원을 중단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에서부터 문화와 예술 그리고 법원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는 태도까지 권위주의로 빠져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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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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