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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화)

[장은수의 책과 미래] 인생의 벽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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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작가의 벽'이라는 현상이 있다. 좋은 작품을 써냈던 작가가 막막함을 호소하며 갑자기 글을 못 쓰게 되는 일이다. 이럴 때 작가들은 글쓰기가 무서워지고, 그동안 쓴 글이 형편없이 느껴지며,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 기분에 빠져든다. 작가의 벽은 짧게는 며칠에서 몇 달, 길게는 수십 년간 속절없이 이어진다.

클로드 모네는 67년간 활동하면서 2500점의 작품을 남긴 다작의 대가였다.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렸으나 그 역시 벽을 피하지 못했다. 1911년 아내가 세상을 뜬 후 두 해 동안 수없이 캔버스만 부쉈다. 하퍼 리는 1960년 '앵무새 죽이기'를 발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 직후 벽을 만난 그는 무려 55년이 흐른 후에야 간신히 두 번째 작품 '파수꾼'을 써내는 데 성공했다.

애덤 알터 뉴욕대 교수의 '언스턱'(부키 펴냄)에 따르면 물 흐르듯 술술 풀리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들이 창조적 정체기에 빠져 절망의 날을 보내듯 누구나 답답한 인생에서 울화의 시간을 삼킬 때가 있다. 나날이 끌려가듯 다니는 만족 없는 직장에서, 차마 끊지 못해 억지로 이어가는 관계에서, 우리는 옴짝달싹 못 한 채 공허한 날들을 보내곤 한다.

제목의 '스턱(stuck)'은 함정에 빠진 듯 답답히 고착된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내버려 두면 자신감을 잃고 자기 비하에 사로잡히며 불안, 공포, 분노, 무기력에 빠진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는 답답함을 증폭시킨다. 모두 화려하고 빛나는 삶만 전시해 자랑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보정된 삶은 진실과 멀다. 난관 없는 삶, 장애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착과 정체는 오히려 내적 도전의 결과다. 편안하고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낯설고 거친 황무지에 뛰어들 때 생겨난다. 조만간 약속의 땅이 기다리는 곳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태다. 답답한 정체는 한마디로 도전과 창조의 다른 이름이다. 월트 디즈니는 첫 사업 실패 후 5년이나 정체를 겪다가 마침내 생쥐 한 마리를 떠올렸다. 벽에 부닥친 사람만이 위대함을 얻는다.

인생에서 답답함을 느낄 땐 무엇보다 목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마라톤 선수는 전체 구간을 약 6만 단계로 나눈 후 한 걸음씩 내디뎌 마침내 긴 거리를 달린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준비를 거쳐 도전하되 방향을 잘 잡았다고 믿는다면 꾸준한 끈기의 가치를 믿고 하루하루 정진하는 게 정체를 빠져나오는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이다. 언제나 작은 성취의 지속적 축적만이 큰 변화를 만든다. 삶에는 샛길이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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