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불행이 아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불행’이다. 예측 불가능성은 인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일관되지 않은 불안정한 부모의 애정이 아이의 내면을 망친다는 건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저출산의 기저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일한다’는 곧 ‘새로 배운다’는 의미와 동일해졌다. AI 같은 기술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과거에 익힌 것들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탓에 현대인들은 변화의 불안을 견디기 위해 특정 생활 방식, 즉 루틴에 집착하는 경향이 커졌다. 통제를 통해 안정을 얻기 위한 것이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에서 악셀 하케는 “어떤 이들은 영양 섭취 면에서 극단적인 방법만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 믿는다. 정치적 올바름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언어에 엄격한 법칙을 정해 놓고 이를 지키려 한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자신을 불안정한 존재로 느끼기 때문에 안전하고 확실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운동 중독, 채식주의, 외국인 혐오나 정치인 팬덤 같은 사회 현상을 이해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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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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