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조정도 방송 중단도 관심 없다"
북미대화서 남측 공간 내주지 않으려는 듯
미국에는 "과거 방식 안 돼"...조건부 대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4일 남측의 대북 유화 정책을 재차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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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4일 남측의 대북 유화 정책에 "허망한 개꿈"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대한 메시지가 예상되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남측의 대화 제안을 선제적으로 봉쇄하는 모양새가 됐다. 다만 미국에는 '조건부 대화' 여지를 열어뒀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라는 제목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대남 대화를 공개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이 대통령이 12일 "북측도 일부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밝힌 데 대해 "근거 없는 일방적 억측이고 여론 조작 놀음"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으며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9일 우리의 대북 확성기 철거 작업에 호응해 북한도 일부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대남 확성기 2대만 철거했고, 그중 1대는 곧바로 되돌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날 확성기를 철거한 적 없다는 김 부부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합참 당국자는 "북한은 (과거에도) 사실이 아닌 내용을 주장하기도 했다"며 부인하는 듯 말했다. 남북의 말이 엇갈리지만, 남측의 유화 조치에 북한이 크게 호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한미가 18일 시작되는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을 일부 조정한 것에 대해서도 김 부부장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되며 헛수고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또한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데 대해 밝혀왔으며 이 결론적인 입장은 우리 헌법에 고착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주장해온 '적대적 두 국가론'을 법으로 못 박겠다는 예고다.
김 부부장은 지난달 28일에도 이재명 정부 들어 첫 대남 담화를 통해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다"며 남북대화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불과 보름여 만에 더 원색적인 수위의 담화를 내놓으며 북한이 당장 한반도 긴장 이완에 나설 여지는 희박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연달아 담화를 내놓을 정도로 대화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데는 '남측으로부터 얻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비치고 있는 만큼 남측과의 유화적 분위기 조성 작업을 거칠 이유는 크지 않다. 러시아의 외교적 후원을 등에 업고 있어 대외적 고립을 타개해야 할 상황도 아니다.
남측의 유화 공세가 내심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남측이 대북 유화 조치를 내놓을수록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남측 목소리가 커지는 결과로 나타날 것을 북한은 우려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북미 간 대화 정국에서 남측에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한 사전 작업이란 얘기다. 대북 유화 메시지가 발신될 것으로 예상됐던 이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 앞서 담화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향해서는 남한과 온도차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 회담장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하노이=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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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북미 대화에는 슬며시 여지를 열어두려는 기류가 감지됐다. 이날 담화에서 김 부부장은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에서 열릴 미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의중을 미국에 전달할 수도 있다는 언론 관측에 "억측이자 허황한 꿈을 꾸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낡은 시대의 사고방식에만 집착한다면 수뇌(정상) 사이의 만남도 미국 측의 희망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뒤집으면 과거처럼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이 아니라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부부장 담화에 통일부는 "지난 3년간 '강 대 강'의 남북관계를 '선 대 선'의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의연하고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남북관계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전환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정상화' '안정화'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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