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시나리오 현실화 배제 못 해
북중러 3각 강화에 머문다면 되레 위기
"한국의 외교 고립감 심화될 수도"
2019년 6월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국빈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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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내달 3일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이 공식화되면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우선 남북대화가 차단된 국면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을 통한 간접적인 대북 관여의 틈이 열린 점은 희망적이다. 반면 김 위원장의 방중 행보가 한미와의 대화 포석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 '북중러의 반미 연대' 강화 그 자체라면 한반도 외교에서 한국이 느낄 고립감은 더욱 심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남북 차단 속 '우회적 대북 통로' 열리나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4년 6월 19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합의한 뒤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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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외교가에서는 일단 김 위원장의 방중을 남측의 대북 관여 공간을 넓힐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부로선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을 통해 정부 입장을 북한에 전달할 우회 통로가 생긴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서다.
외교가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북미 대화 재개로의 준비 작업으로 보고 있다. 2018년 북미 협상 정국에서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수차례 방중했던 전례를 반복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측이 맞다면, 우리 정부 입장에선 고무적인 흐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피스 메이커(미국)·페이스 메이커(한국)론'을 띄워 북미 협상 정국에서 한국의 완전한 소외를 예방할 안전 장치를 마련해뒀다. 김 위원장이 방중을 거쳐 북미 대화에 나선다면 미국을 앞세운 대북 관여가 불가능하지 않은 셈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한국 역할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북미 접촉 가능성이 열린 점은 나쁘지 않은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한반도 외교'를 한국에 유리한 쪽으로 가져올 여력도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가능성은 김 위원장으로선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미국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다. 외교가에선 협상가로서의 자부심이 큰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을 역이용한다면 2019년 판문점 회담처럼 경주를 찍고 그가 직접 방북하는 시나리오도 불가능하진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판문점이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등에서 북미·남북미가 접촉하는 기획이 긴요해졌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북 문제에 관여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미연구소(ICAS)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북미 회담이 성사된다면 평양에서 열릴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중러 등에 업은 北...북미 협상 나설 이유 크지 않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TV로 상영되는 한미 정상회담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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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위원장의 목표가 차후 트럼프와의 접촉이 아니라 열병식 참석을 통한 북중러 3각 연대 강화라면 전망은 완전히 달라진다. 외교 당국 관계자는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 군사적 결탁을 얻었고,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의 경제적 지원까지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북중러 영역 안에서 정치·경제적 후원을 얻은 만큼 남측은 물론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이유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한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선임 객원연구위원도 "김정은의 방중은 한반도 외교에서 한국의 고립감이 더 짙어질 가능성을 함의한다"고 진단했다. 북중러 3각 연대로 북한의 입지는 강화되며 한미의 대북 관여 문턱은 더 높아지게 될 것이란 전망에서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29일 라디오 방송에서 "북한은 지금 굉장히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우리가 기대치를 높여 얘기하는 게 북의 호응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북한이 남측에 한반도 외교 개입 공간을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만큼 당장 우리 정부가 주요 플레이어로 나서기 어려운 타이밍이란 의미다.
전승절에 참석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김 위원장 간 접촉 가능성에도 정부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장윤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전승절 계기 남북 접촉 여지에 대해 "예단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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