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가입이 의무화된 상품들이 있다.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일상생활에서 자동차가 교통수단으로 보편화되면서 자동차 보험의 사회적 필요성도 커지게 됐다. 책임보험만 의무적이지만 추가적인 보장을 제공하는 종합 보험을 선택하는 가입자 비중도 매우 높은 편이다. 한 해 동안 사고가 없으면 좋겠지만, 보험갱신 시점이 되면 이미 보장 혜택을 받고 소멸된 보험료가 아깝게 여겨지거나 새로 보험료를 부담 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가입자들도 있다. 만일 그가 교통 법규를 잘 지키며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운전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보험 제도를 저해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을 꼽을 수 있다. 보험에 가입하고 나서 해당 보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데 소홀해짐으로써 실제로 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도덕성과 무관하게 합리성의 견지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한편 보험 사고가 발생하면 가입자나 사고 피해자는 최대한의 보장 혜택 또는 피해 구제를 받고자 할 것이다. 즉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추어진 행위에 대해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면 손실 규모를 최대한으로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위험으로 인해 보험에서는 흔히 면책금이나 자기부담금을 둔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지거나 사고로 인한 손실 규모가 늘어나게 되면 보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향후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는 모든 보험 가입자의 부담 증가로 귀결된다.
매년 사고 건수가 증가하는 만큼 치료비도 증가 추세이며 특히 총 치료비 중에서도 경상 환자 치료비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대인 보상 총 치료비를 살펴보면 연평균 4% 증가했는데, 이에 비해 경상 환자 치료비는 연평균 9% 증가했다. 또한 자동차 보험의 치료 보장 제도를 악용해 보험금을 허위 또는 과다 청구하는 부정수급 사례들도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월 관계 부처 합동으로 자동차 보험의 합리적 보상 및 보험료 개선을 위한 세부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경상 환자가 8주를 초과하는 장기 치료를 요하는 경우 구체적인 증빙을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 이와 관련한 분쟁 시 별도의 심의·조정 기구를 통해 해결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는 보험 가입자 또는 사고 피해자가 정당한 치료와 보상을 받을 권리를 전혀 침해하지 않으면서 보험 제도를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도덕적 위험은 이제 일상적 용어로서 그 의미가 도덕성이나 사회 규범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됐다. 보험 제도에 있어서 의료 기관의 과 진료는 도덕적 위험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입자 규모가 26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자동차 보험이 앞으로도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보험 제도로서 지속 가능하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공정한 절차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최철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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