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한국외대 경영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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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2차 티켓 시장은 팬덤의 성장과 함께 공연 산업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암표'라는 부정적 프레임과 규제 중심의 접근이 반복되면서 기술 기반의 해법 논의는 제자리 걸음이다. 1차 예매처들이 매크로 방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소위 '아옮(아이디 옮기기)'이나 '댈티(대리 티켓팅)' 같은 교묘한 수법까지 기술적으로 완벽히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다.
문제는 규제 강화가 오히려 음지 거래를 키우는 '풍선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단속의 손길이 닿지 않는 SNS(소셜미디어)나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거래가 옮겨가면 안전장치가 부재한 비공식 시장에서의 사기 위험은 급증하고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팬들에게 돌아간다. 규제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 선진국들은 기술에서 그 돌파구를 찾았다. 미국은 머신러닝 기술로 봇(Bot)을 차단해 시장의 자율성을 지키고, 일본은 철저한 본인인증(KYC) 기술로 거래의 투명성을 높였다. 독일은 구매자 입장 확인 후 대금을 지급하는 '에스크로'와 복제가 어려운 '동적 QR' 등을 결합해 소위 '먹튀'와 위조 티켓을 원천 차단했고, 프랑스 역시 정적 QR과 경량 에스크로로 사용자 편의와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처럼 기술은 시장의 신뢰를 형성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규제에 갇혀 혁신을 놓친 타 산업의 교훈은 뼈아프다. 데이터 규제로 클라우드 전환이 지연된 독일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미국 기업에 핵심 IT(정보기술) 인프라 시장을 사실상 내주게 됐다. 자동차 종주 대륙인 유럽이 규제로 주춤하는 사이, 미국과 중국은 과감하게 자율주행 테스트 허용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했다.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의 규제 환경에서는 온전한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성장 산업을 혁신 기술로 뒷받침하는 대신 규제로 억누르는 것은 현대판 '쇄국정책'이 될 수 있다.
결국 티켓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명확하다. 제도가 시장의 '규칙'을 정의한다면, 기술은 그 규칙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실행력'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1차 예매처와 기획사, 2차 플랫폼, 보안 벤더 등이 기술 역량을 나누는 '생태계 연합모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플랫폼 간 데이터를 연동해 불법 거래 패턴을 공동 분석하거나,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활용해 티켓 이력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구절처럼, 정교한 기술은 시장 참여자를 지켜주는 '안전한 울타리'가 될 수 있다.
가장 나쁜 티켓은 누구에게도 기회를 주지 못한 티켓이다. 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 속에서 티켓 유통 체계는 이제 국가 문화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규제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일 뿐, 그 빈틈을 채워 시장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기술이다. 이제는 사후 단속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기술·시장·제도의 균형 속에서 건전한 티켓 유통 생태계를 구축하고 산업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최병철 한국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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