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미중 '신냉전 시대' 시작의 신호탄 될까
② 中, '반서방 연대' 이끄는 맏형님 자처
③ '실각설' 등 내부 권력 이상설 잠재울까
신중국 건국 10주년인 195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일성(맨 왼쪽) 당시 북한 주석과 마오쩌둥(왼쪽 네 번째) 중국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다섯 번째)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이 톈안문 망루에 서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원본 사진에서 호찌민(세 번째) 초대 베트남 국가주석 왼쪽에 있던 미하일 수슬로프 소련 외무위원장이 빠진 채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바이두 캡처 |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올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냉전시대로의 회귀'를 연상시키는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시 주석은 '반서방 정상'들과 함께 중국의 현대적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밖으로는 '반서방 블록의 세계적 지도자' 면모를 부각하고, 안으로는 권력이상설 등 뜬소문을 불식시키는 효과를 한 번에 누리게 됐다.
북한, 중국, 러시아(옛 소련 포함) 지도자가 한자리에, 그것도 톈안먼 망루에 모이는 것은 냉전 시기인 1959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 10주년 열병식 이후 66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 마오쩌둥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섰고, 왼쪽에는 호찌민 초대 베트남 국가 주석이 섰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은 저우언라이 당시 국무원 총리 옆에 섰다.
신중국 건국 10주년인 195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일성(왼쪽 네 번째) 북한 주석이 톈안문 망루에 서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에서 손을 흔드는 인물이 마오쩌둥(왼쪽 여덟 번째) 전 중국 국가주석, 그 오른쪽이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다. 왼쪽부터 린뱌오 중국 국방부장, 김 주석,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 미하일 수슬로프 소련 외무위원장, 호찌민 초대 베트남 국가주석, 마오 주석, 흐루쇼프 서기장, 류사오치 중국 국가주석, 안토닌 노보트니 체코 대통령. 중국공산당신문망 캡처 |
66년 만에 재현될 북·중·러 톈안먼 망루 장면을 통해 중국은 과거 미소 냉전에 버금가는 미중 신냉전을 여는 역사적 순간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미중 패권전쟁이 격화하는 틈을 타,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판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서방 진영이 뒤흔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을 양옆에 나란히 세운 모습은, 소련이 냉전을 주도한 과거와 달리 이번엔 중국이 '반서방 연대'의 맏형님 역할을 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전파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시진핑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통상 김 위원장 사진을 외부 게시판의 가장 중심에 배치하는 주중 북한대사관이, 방중을 앞두고 '냉전 시대 회귀'를 암시하듯 김 전 주석 사진을 중심으로 사진 전시 배열을 바꾼 것도 의미심장하다.
지난달 31일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게시판에 김일성 주석의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 역대 지도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베이징=이혜미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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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군 권력·당 원로' 불화설 잠재울까
톈안먼 망루는 최근 해외 반중 인사를 중심으로 전파됐던 '시진핑 실각설'을 불식시키고, 시 주석의 권력이 내부적으로 굳건함을 보여주는 무대로 활용될 수도 있다. 중국은 고위 인사 변동을 공식 발표하지 않기에, 최대 군 행사인 열병식은 군 내부 동향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시진핑 실각설'이 먀오화·허웨이둥 등 군내 시진핑 라인의 낙마나 숙청을 근거로 확산한 만큼, 군 고위층의 참석 모습을 토대로 시 주석이 군권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또 과거 열병식에선 후진타오 전 주석 등 전임 지도자도 망루에 올랐는데, 공산당 원로의 참석 동향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당 원로 대 시 주석 권력투쟁설'에 대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후 전 주석은 2022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폐막식에서 강제로 퇴장되는 모습이 포착돼 갖은 소문을 낳았다.
중국 베이징에서 3일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평양·베이징·모스크바=조선중앙통신·신화·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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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중국 관영 매체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전승절 기념식은 3일 오전 9시에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다. 시 주석 연설과 대대적인 군 사열 의식을 시작으로 열병식이 열린다. 이후 오후 8시에는 시 주석과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기념 만찬회 '정의는 필승한다'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다. 2015년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뒤 망루에 올랐다. 이번 열병식을 '다자외교 데뷔전'으로 치르는 김 위원장이 단순히 톈안먼에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적극적으로 외교 활동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1954년 10월 1일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오른쪽 두 번째) 전 북한 주석과 마오쩌둥(첫 번째) 전 중국 주석. 연합뉴스 |
1959년 10월 1일 열병식을 함께 지켜보는 김일성(왼쪽 첫 번째) 전 북한 주석. 연합뉴스 |
베이징=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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