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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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이라는 빅 외교 이벤트의 최대 승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는 평가가 쏟아진다. 동북아에 갇혀 있었던 고립세를 '글로벌 사우스' 진영의 리더급로 단숨에 격상시킨 것은 물론 6년 만의 방중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답방'이라는 카드까지 쥐게 됐기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는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능가하는 외교적 위상을 선전하며 내달 당 창건 80주년(10월10일·쌍십절)에서 민심을 결집할 교두보까지 확보하는 등 전리품을 싹쓸이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사우스' 선두로 약진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4일 "가장 큰 대외적 성과는 역시 핵 보유국이라는 지위를 간접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며 "다자 무대에서 묵인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의 인정까지 받아낸 효과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도 인정했으니, '미국 너희도 인정하라'는 메시지까지 자연스럽게 발신된 것"이라고 짚었다. 전승절 기념식 참석이란 한 걸음에 주변국들의 핵 보유국 지위 묵인과 대미 압박 효과까지 누렸다는 얘기다.
반미 연대의 핵심 멤버로 약진한 점도 전례 없는 성과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북한 스스로도 외교적 위상, 외교 무대에서의 존재감이 북한에 부담이 아니라 전략적 자산이라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했던 외교 저변이 이번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했다고 4일 보도했다. 사진은 포옹하는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조선중앙TV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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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병식 내내 김 위원장과 시 주석, 푸틴 대통령은 한덩이처럼 붙어 이동하고 열병식을 관람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 통칭) 정상들은 세 지도자를 마치 호위하는 듯한 구도를 연출했다.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 그룹인 중러에 김 위원장이 새롭게 포진하게 된 셈이다. 일각에선 차후 북한이 브릭스(BRICS) 같은 서방의 대척점에 있는 외교·경제 협의체에 공식 가입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전망도 나온다.
6년 만의 방중으로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답방 명분도 확보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 기간 시 주석을 만나 방북을 초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중은 지난해 '북중 우호의 해'를 선포하고도 이렇다 할 폐막식도 없이 마무리하며 서먹함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으로선 이번 방중으로 긴장감을 털어내고도 시 주석을 평양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추가 외교 카드까지 확보한 셈이다.
"할아버지보다 더 높은 지도자" 내부 선전 도구 확보
신중국 건국 10주년인 195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일성(맨 왼쪽) 북한 주석과 마오쩌둥(왼쪽에서 네 번째) 전 중국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다섯 번째)이 이 톈안먼 망루에 서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
대내적 성과로는 무엇보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이상의 위상을 얻어낸 점이 꼽힌다. 이번 열병식에 앞서 마지막으로 북중러 정상 간 집결이 이뤄진 건 신중국 건국 10주년이었던 1959년 열병식이었다. 마오쩌둥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 김 주석이 톈안먼 망루에 섰지만 이때 마오 주석 양옆엔 호찌민 베트남 국가주석과 흐루쇼프 서기였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할아버지 김일성도 오르지 못한 곳에 김정은이 선 것"이라며 "이로 인한 내부 선전 효과는 작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은 내달 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에 1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하는 등 민심 결집세를 끌어올리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얻은 김 위원장의 격상된 위상은 인민 통치에 대한 자신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 김정은 당 총비서(국무위원장)가 전날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2면에 별도의 글 없이 사진으로 채웠다. 주로 김 총비서가 중국 전승절 열병식을 보기 위해 망루에 오르기 전 각국 정상급 20여 명과 레드 카펫을 나란히 걸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담겼다. 노동신문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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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은 열병식 다음날인 4일자에 전체 6개 면 중 1~3면을 김 위원장의 열병식 참석 내용으로 채웠다. 40여 장의 사진으로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했는데, 대부분이 김 위원장이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함께 서 있거나, 20여 개국 지도자 그룹에서 김 위원장이 맨 앞열에 위치한 모습이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 주민들로서는 우리 지도자가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지도자라는 점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라며 "내부적인 불만과 동요가 잦아드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러 통한 트럼프의 압박' 패착될지도
반대로 이번 전승절 외교가 "김 위원장의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곤 교수는 "이번 전승절은 김 위원장에게 정치적 승리를 안긴 이벤트였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중러 3각 연대를 과시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압박할 통로로 중러를 역으로 활용할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다. 또한 박 교수는 "북한이 북중러 연대로 묶이면서 중러를 견제하는 유럽과는 일을 도모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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