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미디어 리터러시' 전문가 인터뷰
1950년대부터 대중매체 교육으로 시작해
미디어 리터러시를 필수 공교육으로 포함
혐오 표현 의도 알게 해 휩쓸리는 일 예방
"시민의 전인격적 성장 위한 국가의 의무"
편집자주
어느 날, 극우적 생각을 내보이며 부모를 걱정 시키는 아이. 더 나아가 서울서부지법 폭력 난동에 참여한 10대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 것인가. 한국일보는 10대들의 정치 인식을 분석하고 그 원인과 해법을 파고 들었다.크리스타 프루스키 핀란드 미디어교육협회(FSME) 전무이사가 핀란드 헬싱키 소재의 FSME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헬싱키=최은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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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콘텐츠를 보지 말라는 식의 직접적인 교화는 당장 행동을 제지할 순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적이긴 어렵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혐오 표현을 퍼뜨리는 이면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근원을 알게 하는 게 중요하죠."
지난 5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크리스타 프루스키 미디어교육협회(FSME) 전무이사는 '혐오의 의도'를 교육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특히 혐오 표현에 노출된 청소년에게는 '포용적 미디어 리터러시(Inclusive Media Literacy·미디어에서 모든 계층이 공평하게 조명돼야 한다는 개념)'의 중요성을 알려주며, 혐오와 반대 가치인 '평등'을 강조한다"고 했다. "청소년 스스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고리즘이 혐오 표현으로 물드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면 그에 휘둘리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50년대부터 시작···공교육에 자리 잡아
교육 강국으로 꼽히는 핀란드는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속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과 분석력을 갖도록 하는 교육)' 교육에서도 선두이다. 2017년 첫 순위 발표 이후 매년 유럽 '미디어 리터러시' 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 포르나이넨시의 포르나이넨 종합학교에서 7·8학년(한국기준 중학교 1·2학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포르나이넨=최은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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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간다. 식민지로서의 역사가 길었던 핀란드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대중매체는 사실상 정부 선전지 역할을 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 정보를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게 곧 주권을 지키는 길이라는 시민들의 오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대중매체 교육'이 등장했다.
미디어 종류가 늘어나고 파급력이 커지면서 대중매체 교육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발전했다. 이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수 교육이 돼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가 커졌다. 프루스키 전무이사는 "점차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정계가 이에 호응하며 공감대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핀란드는 '2014 국과교육과정'의 미디어 리터러시에 그래픽·영상 등 비주얼 개념까지 포함한 '멀티 리터러시' 교육을 전 학년 필수 내용으로 포함했다. 독립 교과가 아닌 '모든 교과 과목과 통합된 역량 교육'으로 명시돼, 오늘날 각 교사가 적절한 과목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상시로 융합하고 있다.
교육 성과 질문에 당혹···"아이 성장 마쳤을 때 나타나"
레오 페칼라 핀란드 국가시청각연구소(KAVI) 부소장이 핀란드 헬싱키 소재의 KAVI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헬싱키=최은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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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헬싱키에서 만난 레오 페칼라 국가시청각연구소(KAVI) 부소장은 '핀란드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를 묻자 "미디어화된 환경을 사는 세대가 안전하고 좋은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역량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미디어 속 각종 진영 논리와 가짜뉴스에 휘둘리거나 사이버 범죄, 혐오 표현에 노출되기 쉽다.
레오 페칼라 핀란드 국가시청각연구소(KAVI) 부소장이 핀란드 헬싱키 소재의 KAVI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헬싱키=최은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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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되지만 핀란드는 교육의 실질적 효과를 따로 측정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기관으로부터 교육 성과 여부를 묻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들을 때마다 페칼라 부소장이 쉽게 답변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를 소비하는 세대의 전인격적 성장을 돕기 위해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교육이고, 그 성과 역시 한 아이가 성장을 마쳤을 때에야 나타나는 것"이라며 "핀란드로선 교육 효과를 측정한다는 게 오히려 도전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포르나이넨시의 포르나이넨 종합학교에서 4학년을 대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포르나이넨=최은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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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국민은 극우·성차별 사상에 물들지 않는다
정량 지표 없이도 교육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적으로, 핀란드에선 시민들이 가짜뉴스에 현혹되거나 극우·성차별 사상으로 인해 사회 갈등이 심화되는 경향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정보에 대한 시민 개개인의 판별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핀란드 포르나이넨시의 포르나이넨 종합학교에서 4학년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한 학생이 미디어 사용 윤리에 대한 수업 자료에 답변을 작성해 둔 모습. 포르나이넨=최은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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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체계화되지 않은 나라에 당부하고 싶은 내용을 묻자 프루스키 전무이사는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핀란드는 협력을 잘 한다는 게 강점"이라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잘 안착하려면 학교나 청소년 모임·단체 등 현장에서 먼저 교육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공유돼야 하고, 정부가 이에 맞춰 방향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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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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