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직원들 취업활동 안 되는 ESTA·B-1 비자 소지
취업 가능 비자 받으려면 하세월…"공사 기한 못 맞춰"
ICE, 4명 타깃 영장받은 뒤 475명 체포…노림수 있나
미국 이민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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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한국인 300여명을 체포·구금한 가운데 외교통상가와 업계에서 '대미(對微) 투자 비자 딜레마'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현지 투자를 결정한 국내 기업이 사업을 신속히 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활용한 '비취업 비자' 문제가 현실화했다는 것. 한미 양국 정부가 애초에 대미투자 협의 과정에서 비자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양국 모두 취업비자 확대에 적극적이긴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에서도 해법 모색이 쉽지 않다.
7일(현지시간) 미국 이민단속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현장 단속에서 예상을 넘어서는 규모로 한국이 대거 체포된 것은 이들 대부분이 적법한 비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 당국에 체포된 LG에너지솔루션 임직원 50여명을 비롯해 건설·협력업체 직원 대다수가 최대 90일 단기 관광이나 출장 시 비자 신청을 면제해주는 전자여행허가( ESTA)나 비이민비자인 단기상용(B-1) 비자 소지자로 알려졌다. ESTA와 B-1 비자는 모두 미국 현지 취업활동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미 현지에서 업무를 보려면 원칙적으로 전문직 취업(H-1B) 비자나 비농업 단기 근로자(H-2B) 비자, 또는 주재원(L-1)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비자는 발급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절차도 까다로운 데다 발급 개수도 제한돼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기업이 ESTA나 B-1를 관행적으로 활용해온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건설업 시장에선 숙련 노동자가 만성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공사기한을 맞추려면 국내 기술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노하우를 전수하고 직접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며 "불규칙적으로 적시에 인력을 파견해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 나올지 모를 정식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인력을 파견하는 것은 고려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1기와 조 바이든 정부의 압박으로 대미 투자가 급증하면서 이런 관행이 최근까지 상당 부분 묵인됐지만 언제고 터질 가능성이 컸다는 지적이다. 반(反)이민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ESTA로 미국에 입국하려던 국내 기업 직원들의 입국이 거부되는 사례가 이미 수차례 보고됐다.
일각에선 트럼프 1기나 바이든 정부 시절에 취업비자 확대나 발급절차 간소화, 특별비자 신설 등으로 문제 소지를 미리 해소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취업비자 확대는 양국 모두에 껄끄러운 문제다. 우리 입장에선 미국 취업비자가 확대될 경우 국내 고급인력이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정착하는 등 인력 유출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고 미국은 자국민의 일자리 몫이 줄어드는 것을 방치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외교통상가 한 인사는 "한국인 전문직 비자 쿼터 개설과 관련한 법안이 2013년부터 미 의회에서 매 회기마다 발의됐지만 번번이 처리되지 않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며 "상황이 터진 만큼 외교로 풀 수밖에 없지만 양국 모두 어떤 쪽이든 마음 편하게 선택할 순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그동안 한국 기업의 '관행'을 눈감아오다 대미투자의 상징인 현대차 조지아 공장을 급습한 것을 두고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당초 불법이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 직원 4명을 표적으로 한 단속 작전으로 영장을 받은 뒤 한국인 300여명 등 475명을 체포하는 대규모 수사로 전환한 것을 두고 지난 7월 무역합의에서 이뤄진 대미투자 계획과 관련해 합의문 작성을 압박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인 고용을 늘리라는 압박이라는 해석도 있다. ICE에 현대차 공장을 제보했다고 주장한 조지아주 공화당 정치인 토리 브래넘은 미국인에게 돌아가야 할 일자리에 저임금 불법 이민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역경제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미국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뉴욕=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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