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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T단상] 눈먼 AI 예산을 노리는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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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신문

    문현웅 칼럼니스트


    한때 나름대로 주목을 받았던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 있었다. 청소년들이 주축인 백신 업체로, 이들은 AI를 활용해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검진 및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해 냈다 주장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성년자가 꿈과 열정에 기대 세상을 바꿀 작품을 내놓았다'는 스토리는 좋은 마케팅 포인트였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백신 상품 유료 판매와 관공서 납품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들의 원대한 야망은 실현 직전에 제동이 걸렸다. 베타 버전 백신을 이용해 본 네티즌들이 제품의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 결과 드러난 실상은 처참했다. 백신엔 AI는커녕 검사 기능조차 탑재돼 있지 않았다. 그저 임의로 적어 둔 바이러스 프로그램 리스트와 컴퓨터 내 파일을 대조해 일치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삭제해 버리는, 살생부 방식의 '킬체인'만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제작진의 미숙함 탓에 삭제 대상 리스트 중에는 바이러스뿐 아니라 지워선 안 되는 시스템 파일까지 담겨 있어, 이 '백신'을 시험 삼아 돌려 본 사람 중 일부는 컴퓨터가 망가지는 피해를 입기까지 했다. 실태가 드러나자 대표는 잠적했고, 오래지 않아 기업은 해체 소식을 알렸다.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새 정부가 'AI 적극 지원'을 천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AI 개발팀을 뽑아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사업을 추진한다. 선정된 컨소시엄은 AI 모델 고도화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과 모델 학습용 데이터, 개발 인재 풀 등을 지원받는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은 'AI 3대 강국 도약'을 명분으로 1·2차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한 결과 연간 예산이 기존 6000억원에서 올해 2조4099억원까지 늘었다. 기획재정부는 AI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며 중소기업에는 해당 기술 연구개발(R&D) 비용의 40~50%, 중견기업은 30~45%, 대기업은 30~40%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떡이 커지는 만큼 떡고물을 노리는 손길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체 없는 AI 백신을 내세워 혈세를 탐하던 과거의 그 기업처럼, 미흡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무작정 'AI'를 갖다 붙여 정부를 속이려 드는 무뢰배가 적잖이 출몰하리라는 것이다. 근거 없는 억측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감사원이 공개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기 감사보고서'에선 정부가 중소기업의 AI 도입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한 'AI바우처 지원사업'에서 특정 업체가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도 결과보고서와 검수서를 허위로 제출해 정부지원금 2억4000만원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원 사업이 서류 절차에 치중할 뿐 정작 결과물에 대한 실사는 부족하다는 허점을 노린 행각이었다.

    정부가 뒷받침하는 AI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이러한 시도는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원 규모의 확장 못지않게 정책의 실질적인 효력 및 성과를 검증할 절차 또한 강화될 필요가 절실하다. 고등학생마저 지원 사업 예산을 눈먼 돈으로 보고 달려들던 시절로부터 강산이 한 번은 족히 변했다. 정권 또한 그사이에 세 차례나 바뀌었다. 그럼에도 정부에선 비슷한 수법에 매번 꼬박꼬박 당해 준다면, 집행하는 쪽 또한 결국에는 그들과 공범이나 마찬가지라 간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현웅 칼럼니스트 mhw06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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