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주 변호사의 상속 비법(80)
연금으로 빠듯한 노후…"반찬 줄이고 외출 자제"
경조사비 지출 압박…계좌번호 알림 등 변질 양상
65세 이상 부조금 금지 제안…노후빈곤 완화 해법
그런데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경조사 부조문화이다. 결혼식에 축의금을, 장례식에 부의금을 내는 문화가 ‘예의’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면서, 노인들은 적은 소득에서 생활비를 줄여가며 내야 한다.
기사와 무관함(사진=게티이미지) |
부조문화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돕고, 기쁜 일을 함께 축하하며 경제적으로도 힘을 보태는 문화로 시작된 것이지만 오늘날 본래의 의미를 상당 부분 잃었다. 부조문화의 근원은 농업사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필요로 생겨난 것이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면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고 도시화로 인하여 생활권이 넓어지면서, 내가 내는 만큼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등가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심지어 나이가 들어서 결혼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도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야 한다. 게다가 물가 상승으로 축의금과 부의금 액수가 높아지면서, 그것이 실질적으로 생활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러니 소득이 줄어들거나 없어진 노인들에게는 이 문화는 치명적이다.
대부분 노인들은 은퇴 이후 연금이나 적은 저축에 의존해 살아간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한 달 생활비를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잦은 경조사 참여는 곧바로 경제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결혼식과 장례식에 다녀오면 최소 5만원, 보통은 10만원 이상 내는 현실은 노인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한다. 노인들은 자주 이런 말들을 한다. “연금으로 생활하기도 빠듯한데, 경조사비까지 내면 밥상 반찬이 줄어든다.” 결국 이들은 부조를 피해 인간관계 자체를 축소하거나, 초대받는 자리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어 사회적 고립에 빠지게 된다.
부조문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경조사를 과도하게 알리고, 이를 통해 부조금을 챙기려는 태도마저 눈에 뛴다. 전화도 아닌 스마트폰 메세지로 경조사를 알리면서 계좌번호를 눈에 잘 띄게 올려놓는다. 가까운 친지나 관계가 아닌데 무작위로 통보해 부담스러운 선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막상 자신에게 일이 생겼을 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한 불균형하고 일방적인 부조문화는 더 이상 상부상조라 할 수 없다. 또한 돈을 내지 않으면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관계가 악화되는 등 경조사 부조문화의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래서 필자는 국회와 정부에 요청한다.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4조 제4항은 “국가는 노인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인들이 경조사 문화로 인해 연금 등 한정된 소득을 생활과 무관한 지출에 사용하도록 강요받고 있으므로 노인의 사회적 약자성을 고려할 때, 국가는 이를 방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한 연금을 받는 나이인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부조문화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이제 법으로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해서는 경조사 부조금을 금지하도록 하자. 결혼식은 축하의 마음만 전하고, 장례식은 참석만으로도 예를 다한 것으로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자. 65세 이상의 부조를 금지하면 앞으로 노인들에게는 부조를 받을 수 없다. 그리하면 노인은 부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화가 생길 것이다. 노인들은 자신의 연금과 저축을 생활비와 의료비에 온전히 사용할 수 있어서 노인 빈곤의 문제를 일부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노후 빈곤을 막는 실질적인 복지정책이 될 것이다.
노후의 삶은 이미 여러모로 힘들다. 몸은 힘든데 의료비, 생활비, 주거 문제까지 겹쳐서 희망 없이 살아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조사 부조문화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돈이 없어서 경조사에 가지 못하는 마음, 경조사에 들어간 돈으로 반찬을 줄이고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노인의 마음은 얼마나 서글플까. 법과 제도를 통해 노인들이 부조문화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새로운 경조사 문화를 만들어서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자. 과거의 관습을 유지하면서 노후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리석지 않은가.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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