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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5·18 사적지 30호 지정된 광주송정역 역사적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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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대 모여 계엄군 성토…일부는 광주 진입 시도

    연합뉴스

    1980년 5월 항쟁 당시 송정리역 앞 모습
    [광주 광산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5·18 민주화운동 45년 만에 사적지로 지정된 광주송정역이 재조명받고 있다.

    21일 광주 광산구에 따르면 광주송정역은 1913년 10월 1일 문을 열어 113년째 호남의 교통 관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송정리역 광장은 과거에도 유동 인구가 많은 거점이어서 정치인이 유세하거나 운동선수가 올림픽 등에서 메달을 획득하면 환영 행사 등이 열리기도 했다.

    1980년 5·18 당시에는 옛 전남도청 일대와 더불어 신군부에 항거한 시위대가 모여든 곳이다.

    특히 계엄군은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를 자행한 뒤 광주 외곽으로 물러나 봉쇄 작전을 펼쳤는데 송정리 방향에는 광주공항 인근에 봉쇄선이 마련돼 있었다.

    전날 시위대를 모으기 위해 광주를 빠져나가 흩어졌던 시위 차들이 계엄군 봉쇄 작전 때문에 광주로 진입하는 도로가 차단되자 관문인 송정리로 집결했다.

    연합뉴스

    광주송정역 광장 5·18 사적지 지정
    (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19일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로 지정된 광주송정역 앞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광주송정역 광장은 1980년 5월 22일 시민들이 계엄군 무력 진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시위군중이 모였던 장소다. 2025.9.19 iso64@yna.co.kr


    당시 시위대는 버스 10여대에 나눠 타고 시위 활동을 하거나 송정역광장을 중심으로 모여 광주의 참상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며 계엄군의 만행을 성토했다.

    다음날인 22일까지 일부 시위대는 광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거나 다른 곳으로 우회했고, 계엄군은 장갑차 등을 앞세운 송정리 시가지를 돌며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항쟁 기간 송정리(송정동·영광통) 일대에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모두 25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송정역은 2004년 고속열차(KTX)가 개통한 것을 계기로 열차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2004년 953명에서 올해 1만3천여명으로 14배 증가했다.

    이로 인해 송정역시장을 비롯한 주변 상권이 크게 발전하기도 했다.

    광산구 관계자는 "송정역 광장은 시위대의 집결지이자 통과 지점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며 "호남의 관문인 광주송정역 앞에 5·18 관련 설명 공간을 조성하고 홍보 자료를 제작·배치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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