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8일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누사이라트(누세이라트) 난민캠프 내 건물이 폐허로 변해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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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터진 가자전쟁 2년 동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넘어 중동 곳곳에서 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최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위한 새로운 평화 구상’이라는 이름의 합의안을 만들어 하마스에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이스라엘은 이 안에 철군을 늦출 수 있는 내용을 등 심어 놓았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돼도 “슈퍼 스파르타”가 되겠다는 이스라엘의 포화를 멈추게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며, 중동의 역학관계는 크게 바뀌고 있다.
이스라엘 채널12 방송과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지난 3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하마스가 미국의 제안을 조건부로 승낙하면서 이스라엘군의 철수 계획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마스의 최종 결정은 카타르 협상단이 아닌 가자지구 지도부에서 내려야 해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에 가자 평화구상에 하마스가 답할 시간을 “3~4일 줄 수 있다”며 “우리에겐 필요한 단 한개의 서명이 남아 있는데, 만약 그들이 서명하지 않는다면 지옥 같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72시간 내 모든 인질 석방, 이스라엘의 단계적 철군, 임시과도정부 통치와 국제안정군 주둔 등을 담은 가자전쟁 평화구상을 발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백악관에서 양자 회담을 한 뒤 이 구상에 합의했고, 이후 하마스에 합의안을 보내 응답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막후 상황도 공개됐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이날 이스라엘이 논의 과정에서 자신들한테 유리한 쪽으로 평화구상 초안을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날인 28일 미국 뉴욕에서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만나 6시간가량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 철수를 하마스의 무장 해제 진행과 연계하도록 하고, 철수를 중단할 거부권도 얻어냈다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가자지구에 머물지 않았다. 레바논·시리아·이라크·예멘·이란에 이어 미국 동맹국인 카타르까지 모두 7개국을 공격하며 전화가 번졌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4차에 걸친 중동전쟁을 치르며 중동 각국과 격돌했으나 2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이처럼 많은 국가 및 정파와 싸우며 전선을 확대한 적은 없었다.
중동에서 지정학적 대립의 한 축이던 이란이 이끄는 시아파 연대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붕괴 수준으로 약화됐다.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지난해 9월 이스라엘군의 융단폭격으로 무력화됐다. 32년간 이 단체를 이끈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이때 대거 숨졌다.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던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은 이 여파로 지난해 12월 붕괴됐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처음으로 시아파의 맹주 이란을 직접 타격했고 올해는 대규모 폭격까지 했다. 지난 6월 이란 수도 테헤란 등의 군사시설과 핵시설을 폭격했고, 미국의 이란 나탄즈 핵시설 폭격 가담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군사적인 승리를 거듭할수록 정치·외교적으로는 고립되고 위기가 가중되는 딜레마에 빠져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시점 직전에 있으나,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국제적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점이 그 반증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 포함된 서방 국가들이 유엔 총회를 계기로 최근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승인했다. 지난 9월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유럽연합은 이스라엘 극우 각료 제재 및 무역혜택 박탈 등 포괄적 제재안을 발의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고조되는 국제 사회 비판과 제재 움직임을 의식해 9월15일 “이스라엘이 일종의 고립 상황에 있다”며 “우리는 점점 더 자급자족적 성격의 경제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폐쇄적 군사 도시 국가인 스파르타에 비유해 “이스라엘이 슈퍼 스파르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이스라엘 경제계에서조차 “우리는 스파르타가 아니다”라는 반발이 쇄도했다.
이후 네타냐후 정부가 탈출구로 삼은 것은 또다시 미국이었고 9월29일 평화 구상안 발표로 이어졌으나 전쟁이 끝날지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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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년간의 가자전쟁으로 중동의 기존 지정학 구도에 이미 균열이 났고, 이스라엘의 폭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자전쟁 2년 동안 이스라엘은 미국의 제어도 무시하고 독자적 행동을 추구하는 ‘전략적 공세 국가’로 중동에서 부상했다. 고조되는 국제 사회의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앞에서 네타냐후 정부는 가자지구 점령과 서안지구 합병을 공식적으로 표방하지는 않더라도, 단계적·실질적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 기회에 ‘대이스라엘’을 추구한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레바논 남부 점령을 영구화하고,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세력 공백이 생긴 시리아에서 남·동부를 점령해가며 친서방적인 쿠르드족이 있는 이라크 북부의 이란 접경 지역까지 세력 확장을 시도 중이다. 이스라엘에서 이라크 북부까지 이르는 이른바 ‘다윗의 회랑’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전쟁을 끝내더라도 가자 및 서안을 완전히 장악해 팔레스타인 국가 출현을 실질적으로 막는 한편 중동에서 공세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대이스라엘’ 노선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략적 공세 국가 이스라엘의 출현은 미국이 추진해온 오랜 중동 정책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이스라엘 안전 보장,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및 자국의 영향력 유지를 도모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교 정상화를 시작으로 한 이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아브라함 협정으로 계속돼 왔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종착점으로 하는 이 협정의 진전은 가자전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란과의 핵협상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 가능성이 줄어들었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결은 더욱 격화될 것이 분명하다.
가자전쟁 이후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거부하고 있다. 더구나, 가자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중동 전역에 펼친 전략적 공세는 사우디 등 수니파 친미 보수 왕정 국가들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물론이고 미국에 대한 회의를 증폭시켰다.
사우디는 가자전쟁 발발 전인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재수교했다. 앞서, 사우디는 2022년 우크라이나전쟁이 터지자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불참하고는, 러시아와 교역을 유지하며 석유 가격 공조를 해왔다. 미국·이스라엘 진영과 중국·러시아·이란 진영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통해 세력 균형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9월9일 중동에서 미군의 최대 공군기지가 있는 카타르도 공습해 카타르 장교 1명이 숨졌다.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으로 카타르 정부에 사과했지만,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친미 국가들은 이 사건으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크게 낮아졌다.
중동 분쟁 수렁은 이제 강대국들의 영향력조차 희석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가자전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중동 전역으로 전쟁을 확대해온 네타냐후 내각은 내년 10월에는 총선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도 11월에 중간선거가 있다. 양국의 선거가 중동 분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하는 고비가 될 것이다.
정의길 김지훈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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