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지방시대위원회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경수 지방시대위 위원장, 이 대통령, 신용한 지방시대위 부위원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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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다례 | 아트스페이스영산포 이사장
이재명 정부의 지방시대위원회가 내세운 목표는 분명하다. “지역 불균형 해소, 정주 여건 개선, 지방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구현”이다. 이 방향 자체는 전적으로 옳다. 문제는 최근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이 이 목표에 얼마나 충실한가이다.
이번 보고의 핵심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5극3특’ 구상을 통해 국토 전체를 성장의 무대, 전략적 생산공간으로 재설계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향후 5년간 대기업 1400조원 국내 투자를 비수도권에 집중시키고, 정부가 규제·세제·입지 특례를 묶어 제공하는 ‘균형성장 빅딜’이다. 얼핏 보면 국토를 넓게 쓰는 과감한 균형발전 전략처럼 들리지만, 또 한번 ‘장부상의 인구’, ‘장부상의 성장’에 머무를 위험이 크다.
이미 정부는 지방소멸 대응의 이름으로 관계인구, 생활인구, 관광주민증 같은 새로운 인구 개념을 잇달아 도입해 왔다. 상주인구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지역과 느슨하게 연결된 사람들, 잠시 머무는 방문자를 다시 ‘인구’로 세어보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들 상당수는 짧게 머무는 방문자에 그치고, 아이를 키우고 학교를 떠받치며, 노인을 돌보고 마을회의에 나오는 정주 인구의 역할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숫자는 채웠지만, 지방소멸의 핵심인 정주 기반 붕괴와 공동체 해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편 인구 구조는 다른 방향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한국 인구 20명 중 1명은 외국인, 귀화자, 이민 2세 등 이주 배경 인구에 속한다. 이들은 전체 인구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연령 구조도 훨씬 젊다. 미래의 생산연령 인구이자 돌봄 주체,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미 분명한 단서가 주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책 담론에서 이주 배경 인구는 여전히 노동력·통계 보정용 숫자 취급을 받기 쉽다. 지방소멸 대응 논의 속에서도 장기적인 이웃·시민이 아니라, 부족한 인구를 메우는 수단 정도로 취급된다.
정책의 방향이 잘못 서 있다는 사실은 정주 환경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각종 통계는 농촌·지방에서 인구 감소와 함께 의료·교육·교통 등 기본 서비스 접근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심한 지역에서는 병원과 학교가 줄고, 버스가 끊기며, 어린이 공원이 방치되고, 광장이 사라지는 등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조차 위태롭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관광주민증과 관계인구 전략은 지역경제를 잠시 숨 쉬게 하는 보조 수단은 될 수 있지만, 정주 기반과 돌봄, 공론장의 붕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전남 나주시 ‘영산포’는 이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혁신도시 조성과 대규모 산업단지 등 각종 투자가 이어졌지만 공단 배후 지역인 영산포는 인구가 줄고 골목 상권과 주거, 공공서비스가 무너진 채 사실상 나주 관내에서도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국토와 기업의 지도는 화려해졌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도, 정주와 돌봄, 마을의 회복 탄력성은 무너진 현장이다. 영산포는 국토·투자 지도와 생활·정주의 지도가 완전히 어긋난 대표적 사례다.
이런 현실을 놓고 보면, 지방시대위원회의 5극3특·1400조원 전략은 “국토와 기업의 지도를 다시 그리자”는 야심 찬 도전이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장부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 광역권을 성장축으로 나누고 특화 권역을 설정해 투자를 유치하는 일은 통계·지도 위에서는 그럴듯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투자액·지역총생산·관계인구 지표를 채우는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면, 모든 것이 소멸해 가는 속에서 버티는 사람들의 삶은 그만큼 비어갈 것이다.
지방소멸 시대에 진정 던져야 할 질문은 “어디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여기에서 함께,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국토를 어떻게 나눌지가 아니라,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지, 이곳에서 늙어갈 수 있는지, 이주민이 이 동네를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균형발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지방시대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지방시대위원회의 전략은 균형발전이라기보다, 사람 대신 땅과 숫자를 앞세운 또 하나의 국토개발 보고서에 가깝다. 이제라도 국토와 기업의 지도가 아니라 ‘정주의 지도’, 곧 함께 살아갈 사람들과 그 삶의 조건을 중심에 둔 지도에서 지방시대의 전략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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