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발사 장면 담은 북한 그림들 |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북한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다. 지난달 8일부터 이달 10일까지(현지시간) 모스크바 전(全)러시아 장식예술 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인민의 나라'라는 전시다.
박물관 정문에는 전시회 포스터와 함께 인공기가 걸려 있었다. 전시회장 초입에는 북한 배지를 가슴에 단 북한 남성 두 명이 서 있었다.
먼저 이 전시를 관람하고 온 지인은 북한 관계자들이 한국인을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지만, 이날 전시장을 지키던 북한 사람들은 한국인이 들어오든 러시아인이 들어오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어로 말하고 사진을 찍어도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이 담긴 대형 액자였다. 지난해 6월 푸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조약)을 체결했을 때의 사진이다. 이번 전시가 북러 밀착의 결과임을 알리는 듯했다.
북한 미술 전시회 열린 전러시아 장식예술 박물관 |
작품 중에서는 '한 전호에서'라는 그림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걸려 있었다. 북한에서 발전한 고유한 동양화 양식인 조선화 작품인 이 그림은 북한군과 러시아군이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와 총 등 무기를 들고 어깨동무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북한의 러시아 접경지 쿠르스크 파병으로 공고해진 북러간 혈맹 관계를 강조한 이 그림은 러시아 현지 매체들도 주목한 바 있다. 북한 군인들이 전장에서 격발하는 장면을 그린 '꾸르스크(쿠르스크)지역의 해방을 위하여'라는 작품도 있었다.
북한의 러시아 쿠르스크 파병 표현한 그림 |
전쟁과 무기에 관한 그림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미사일이 불꽃을 뿜으며 하늘로 발사되는 장면을 담은 그림들이 많았다. 미사일 그림의 종류도 유화, 조선화, 판화 등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도자기에도 미사일이 그려져 있었다. '정의의 보검', '멸적의 불뢰성', '절대적 힘', '무자비한 타격', '불의의 타격', '명령만 내리시라' 등 직설적인 제목도 눈에 띄었다.
반짝이는 조개껍데기를 붙여 만든 북한 특유의 자개 공예 만년화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만년화 작품으로는 천리마 발사체가 연기를 내뿜으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장쾌한 뢰성', 첨단 드론을 묘사한 '무인전략정찰기' 등이 전시됐다.
무기, 전투 관련 그림들이 전시된 홀을 모두 지나니 북한 사람들의 일상과 북한의 도시·시골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나왔다. 그림들의 분위기는 좀 더 밝았지만, 선전 메시지는 더욱 노골적으로 담겨 있었다.
자개로 그린 북한 드론 그림 |
예를 들어 축제가 벌어진 거리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과 어린이들, 훈장을 달고 있는 노인이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의 제목은 '원수님 은덕일세'다. 그림 속 어깨춤을 추는 노인의 손에는 '살림집리용(주택이용) 허가증'이 들려 있다. 비슷한 분위기의 '사회주의 락원일세'라는 그림에서도 노인이 '살림집리용 허가증'을 들고 웃고 있다.
올여름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해수욕장이 피서객들로 붐비는 모습, 평양 시내와 신도시 화성지구의 화려한 야경과 2층 규모 '대동강 맥주집'의 왁자지껄한 모습, 비료 공장과 식품 공장 앞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 등 북한 정권의 치적을 강조하려는 듯한 그림들도 이어졌다. 많은 그림 속 성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전화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쿠르스크 전투 투입된 북한군 그림 |
'황홀경을 펼친 인민의 리상거리'라는 작품은 도로와 건물의 불빛과 밤하늘을 장식한 불꽃놀이의 반짝임 표현이 독특했는데 과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극찬했다는 보석 가루로 그린 그림, 조선보석화였다.
쿠르스크 전투 파병, 2024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 우승 등 작품들의 상당수가 비교적 최근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었다. 이 전시를 위해 그린 그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그림에는 올해 상반기 날짜가 적혀 있었다. 주요 작품들은 QR코드로 러시아어 설명을 제공했다.
대동강맥주집 |
전시장 방명록에는 북한 사람들이 한글로 남긴 듯한 '감사합니다', '조로(북한과 러시아) 우정 만세' 등 글이 다수 있었다.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는 한 북한 출신 관람객은 "조국 예술전람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린 것은 아주 반가운 사업"이라는 평가를 적어뒀다.
러시아어로 적힌 글 중에서도 "이분들은 우리 땅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형제들" 등 북한의 쿠르스크 파병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들이 발견됐다. 북한에 우호적 감정이 있거나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이 전시장을 찾은 듯했다.
북한 미사일 그림 |
그는 보석화, 자수 등 북한의 독특한 미술 양식도 신기했다며 "그런 것은 처음 본다. 해외 접촉이 차단된 북한 화가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보고 싶어졌다"며 흥미를 보였다.
그는 그림 속 북한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인 것에 대해 "북한 화가들은 다른 현실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좋은 것만 골라서 보여주고 싶어 한다. 소련도 그랬다. 소련 시절 그림이 생각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과거 공산권에서는 사실적인 묘사 속에 소련의 이념과 사상을 담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 유행했고, 북한 미술도 그 영향을 받았다.
도자기에도 미사일 |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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