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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호랑이에 반해서 멸종과 싸우는 과학자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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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l 임정은 지음, 다산초당(2025)




    한반도는 호랑이의 땅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호랑이와 표범을 아우른 ‘범’에 관한 기록이 600건 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이기에 옛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영물이었던 호랑이를, ‘호환’의 위협을 모르는 오늘날의 우리는 맘 편히 좋아만 한다. 우리가 개최한 두번의 올림픽에서 모두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썼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호랑이 캐릭터가 등장하여 사랑받았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랑이를 각별히 여긴다는 사실이 이제 세계에도 알려졌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적어도 남한에는 야생 호랑이가 없다.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잡힌 개체를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지 꼭 백년이 되었다. 산군(호랑이를 높여 부르는 말)이 돌아올 가능성도 없다. 이 동물이 종으로서 생존하려면 몇 마리만 있어선 무의미하고 최소존속가능개체군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 수는 약 50마리다. 분절된 남한의 자연은 한 마리도 지탱할 수 없을 테고, 비무장지대(DMZ)조차 호랑이를 품기엔 부족하다. 한반도에 있었던 호랑이, 즉 아무르호랑이는 이제 러시아, 중국, 북한 접경 지역에 750여 마리가 남았다.



    우리 손으로 없앤 동물,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없는 동물을 이렇게 집단적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건 조금은 서글픈 일 아닐까?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 때, ‘그래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 하고 나선 사람이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를 쓴 임정은 연구자다. 현재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일하는 그는 대학 때 동물원에서 만난 아무르표범에 한눈에 반해 범을 지키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20년간 그 길을 개척해 온 보전생물학자다.



    ‘생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여 개입하는 응용생물학’. 보전생물학의 정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보전생물학자가 현장에서 실제 하는 일을 보니,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종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다 하는 작업.’



    저자가 중국 훈춘 보호구역에서 했던 활동이 그렇다.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는다고 미워하는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들과 가까워져야 하니, 그는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친해진다. 정책에 영향을 미쳐야 하니, 관료를 만날 수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가서 제안서 낼 기회를 노린다. 야생 호랑이를 마주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호랑이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서 그들의 말을 듣고 설득한다. 생태학과 동물학은 기본이고 통계학, 인류학, 사회학에도 정통해야 하는 일이다. 책에 소개된 산양, 삵, 코뿔소 등 모든 종의 보전 활동이 그렇다. 동물을 아끼기는 비교적 쉽지만, 동물을 위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간 세상에 개입하여 난마처럼 얽힌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나는 이보다 헌신적인 사랑을 결코 본 적이 없다.



    저자가 왜 이 책을 썼는지도 알 듯하다. 야생동물을 제일 위협하는 존재가 인간인 이상, 보전의 제일 과제는 인간에게 공존과 조율을 설득하는 일이다. 이 책을 읽고 한 사람이라도 더 생각의 폭을 넓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을 테니, 이 책 자체가 보전생물학적 활동인 것이다.



    한겨레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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